입력 : 2013.09.22 03:13
"1945년 8월 1일. 오늘 폭격은 유달리 심했다. 조선소와 식당이 폭격당했다. 나는 시체 발굴 작업에 동원됐음." 일제강점기 말 45년 1월 강제징용돼 나가사키 조선소에 끌려간 김순길씨가 남긴 일기다. 스물두 살 부산 사람 김순길은 주먹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노예처럼 일했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지만 그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그는 일기에서 "악마 나가사키로부터 귀국길에 오른 것은 8월 12일 오후 8시"라고 치를 떨었다.
▶일제 말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군함을 만든 조선인이 4700여명이었다. 그중 1600여명이 원폭에 목숨을 잃었다. 나가사키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외딴섬 하시마에도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한(恨)이 서려 있다. 조선인들은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해저 탄광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122명이 질식하거나 사고로 숨졌다지만 일본인 감독관에게 맞아 죽거나 탈출하다 익사한 경우도 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군(遺産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려고 추진해 왔다. 나가사키 조선소와 하시마 탄광을 비롯해 28개 산업 시설과 유적을 모은 곳이다. 아베 정부가 지난 17일 이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이 '모노즈쿠리' 대국의 기초를 다진 역사를 이곳이 보여준다"고 했다. 모노즈쿠리는 '장인 정신이 깃든 일본 제조업'을 가리킨다.
▶요즘 일본에선 TV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가 시청률 30%를 넘기며 인기를 누린다. '제조업 대국' 일본의 부활을 바라는 민심을 잘 반영한 덕분이다. 주인공 은행원이 아버지가 개발한 신소재 나사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대출을 담당하는 주인공은 손재주를 살려 물건을 만드는 중소기업엔 서슴없이 돈을 빌려준다. 아베 총리는 그런 민심을 잘 안다. 제조업 대국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에 올려 일본인의 자부심을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제조업 대국의 역사'를 말할 때 강제징용된 한국인의 피눈물은 늘 모른척해 왔다.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국민의 아픔이 서린 곳이어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적절치 않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2년 뒤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우리 입장을 꾸준히 전할 수밖에 없다. 이웃의 피눈물이 담긴 일본의 유산 앞에 '세계'를 붙이는 건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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