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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席 무용수로 1년… 최고 대우와 고통을 맛봤다.

yellowday 2013. 7. 15. 19:16

 

['오네긴' 공연차 한국 온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발레리나 서희]

ABT 수석 자리에 선 지 1년… 통보 받는 순간 얼떨떨했는데 군무 중앙에 서니 가슴 '뭉클'
의상·음악… 최고 대우 받지만 최고 공연에 대한 부담감도 커
"세상에 공짜 없다" 절감했죠

지난해 7월 6일 발레리나 서희(27)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던 순간, 기자는 우연히 뉴욕에서 그 현장에 있었다. 세계 최정상 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솔로이스트였던 그는 이날 예술감독 케빈 매킨지로부터 "수석무용수로 승급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석무용수, 그것도 ABT의 수석무용수는 세계 발레의 꽃이다. 그로부터 1년,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 출연을 위해 잠시 고국을 찾은 그를 지난 9일 숙소인 한 호텔에서 만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절감한 1년이었어요. 수석이 되기 전에는 출근길에 오늘 뭘 할지, 퇴근길에는 내일 뭘 해야 나아질지를 고민했어요.

이젠 24시간 생각해요. 수석의 자리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1년간 홍콩, 베이징, 워싱턴, LA 등 뉴욕에 언제 있었나 싶게 바쁜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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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서희는 무대에서나 일상에서나 변함없이 차분해 보인다. 정작 본인은“속에서는 말도 못하게 끓어오른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7일과 8일 그는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아나로 무대에 섰다. 3막에서는 오네긴을 떠나보내는 슬픔이

가녀린 어깨선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고 깊이 있는 타티아나'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이 절대 과하지 않음을 보여준 2시간이었다.

1년 전 수석 통보를 받던 순간, 서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난다"면서. 그래서 "언제 실감을 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군무진(코르드발레, corps de ballet)이 만들어놓은 긴 줄 사이로 나올 때"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발레에서 여주인공은 군무진이 늘어선

줄 사이로 시선을 한껏 받으며 등장해요. 저도 한때는 그 줄을 만드는 무용수였는데…. 군무진이 만든 줄 사이로 나가는 여주인공을

옆눈으로 보기만 하다, 이제 내가 나가는 사람이 됐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어요."


	발레‘오네긴’타티아나로 열연하는 모습 사진
발레‘오네긴’타티아나로 열연하는 모습.
'뭉클했다'는 말을 하는 서희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하루아침에 월반한 게 아니라 군무에서부터 찬찬히 올라온 것에 감사해요.

이 자리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떠올리면 어떠한 고통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완벽하지 않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부족하니까 노력했던 거고, 그래서 감사한 것도 알게 되고요."

◇"완벽하지 않아서 감사해요"

ABT 무용수들은 해외 공연 때 별 5개 이상의 호텔에서만 숙박하는 등 최상의 대우를 보장받는다. 올해로 21년차 수석인 최고참 줄리 켄트(44)부터 막내인 서희까지 수석무용수는 17명. 수석이 되면 자신의 계약 조건을 직접 정해서 발레단 측과 협상한다. 출연 작품부터 일상적 대우까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공연 시에는 화장·의상·헤어·음악 등에 수석(공연에서는 주역)만을 위한 전담 인력이 배치된다. "최고 대우를 해줄 테니 최고 퍼포먼스를 보여라, 이게 조건인 거죠."

한번은 스트레스가 폭발할 듯 쌓여서 선배 무용수에게 물었다. "경력이 쌓이면 이 고통이 나아지나요?"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니, 나아지지 않아. 더하면 더했지." 고참 수석과 막내 수석의 차이는 '자제력(control)'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제력, 그게 제일 큰 과제예요. 다만 시간이 필요하겠죠. 선배가 20년 걸려 찾아낸 걸 제가 1년 만에 찾아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