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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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선도' - 이인상 그림, 18세기, 종이에 담채, 96.7×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가는 그가 누군지 넌지시 밝힌다. '중국인이 그린 검의 신선을 흉내 내봤다'고 그림 속에 써두었다. '검의 신선'이라면 다시 물을 것도 없다. 곧 당나라의 문인 여동빈(呂洞賓)이다. 시 잘 짓는 학자이자 벼슬을 버린 은자, 게다가 칼솜씨 하나로 살아서 신선의 반열에 오른 존재다. 여동빈은 깔끔하고 여무진 이미지 덕분에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린, 문자 그대로 '아이돌'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했다. "나에게 칼이 세 자루나 있다. 번뇌를 끊는 칼, 분노를 끊는 칼, 색욕을 끊는 칼." 욕망을 잘라내서 그런가, 그 얼굴이 서늘하고도 맑게 그려졌다.
그린 이도 여동빈을 좋아한 인물이다. 문인화가인 이인상(李麟祥·1710~1760)이다. 그는 늘 '탈속'을 꿈꾸었다. 하도 심지가 굳어 벼슬할 때는 일 처리에 날이 선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그림에서 칼날을 보여주지 않는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검객'이란 시가 생각난다.
'십년 동안 칼 한 자루 갈았지만/
서릿발 같은 칼날 아직 쓰지 않았지/
오늘에야 그대에게 보여주노니/
그 누가 공평치 못한 일 하던가'
뽑을 때는 신중히, 뽑은 뒤에는 단호히, 그렇게 써야 칼답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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