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관의 한국실을 보면 대개 청자, 백자가 주류를 이루고 미술관에 따라 나전칠기, 고려불화 명품으로 한국 미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회화는 약하다. 겸재, 단원의 본격적인 작품은 아주 드물다.
그런 중 클리블랜드 미술관에는 양송당(養松堂) 김시(1524~1593)의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사진)라는 명화가 소장되어 있다. 양송당은 이 칼럼(93회)에서 '동자견려도'(보물 783호)를 얘기하면서 소개한 바 있는 선조시대 대표적인 화가이다.
눈 걷힌 겨울날의 산수를 그린 이 작품은 편화(片畵)가 아니라 전지 반절(20호) 크기의 본격적인 작품으로 필치가 아주 곱고 세련되었다. 특히 화면 왼쪽에 '갑신년(1584) 가을에 양송거사가 안사확(安士確)을 위하여 한림제설도를 그리다'라는 관지(款識)가 한석봉체로 단정히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계수(季綏)'라는 자(字)와 이름 김시를 새긴 도장이 또렷이 찍혀 있다.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도서낙관이 분명하고 작품 이름과 누구를 위하여 그린 것인가까지 명확히 기록한 최초의 작품이다. 임란 이전의 작품 중 안견의 '몽유도원도' 다음 가는 회화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 그림은 일본 오사카의 야부모도라는 개인 컬렉션이었는데 1980년대에 이 미술관이 구입한 것이다. 당시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중국, 한국, 일본 미술을 나라별이 아니라 회화, 조각, 도자기 등 장르별로 세 나라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동양미술사'의 저자인 셔먼 리 관장과 한국 미술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던 수석큐레이터 마이클 커닝햄은 한국유물 양이 적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당시 유물구입비의 80%를 한국미술품 구입에 배정했었다.
25년 전, 커닝햄을 만나 값이 만만치 않았겠다고 말하자 후원자인 세브란스의 구입 기금이 있어 가능했다며 작품의 질을 생각하면 비싼 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면 가운데 다리를 건너오는 인물을 가리키며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이라며 감탄에 감탄을 더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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