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부부강간죄 공개변론…'침대도 넘보나'vs '흉기 협박도 보호하나'

yellowday 2013. 4. 18. 20:16

입력 : 2013.04.18 17:51 | 수정 : 2013.04.18 18:38

 
“국가 형벌권이 침대까지 넘보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다.” (피고인 측 신용석 변호사)
 
“칼과 흉기를 사용한 무자비한 폭행을 방치하는 건 국가의 보호의무 포기다.”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아내를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로 1ㆍ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남편 A(45)씨를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2001년 결혼한 아내와 불화로 부부싸움이 잦았던 A씨는 아내가 밤 늦게 귀가하자 흉기로 위협해 억지로 성관계를 맺었다.
 
1심과 2심은 “형법에서는 강간죄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법률상 처(妻)가 제외된다고 할 수 없다”며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1심은 징역 6년에 10년간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2심은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공개 변론에 나선 신 변호사는 부부 사이에서는 강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 변호사는 “형법 297조에선 강간죄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회에서 아내를 ‘부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며 “강간죄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고친 개정 형법이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부녀에 처가 포함되는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윤용규 강원대 교수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윤 교수는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라면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해석은 타당하다”며 “명확한 이유없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석을 바꾸다는 것은 신(新)응보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반박에 나섰다. 이 부장은 “형법에서 강간죄 객체를 부녀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배우자를 제외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며 “칼과 흉기를 사용한 무자비한 폭행을 부부관계라는 이유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국가의 보호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 반박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선 김혜정 영남대 교수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치 않은 성교를 하지 않을 자유가 침해될 경우 배우자도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법관의 질문도 이어졌다. 신영철 대법관이 검찰 측에 “부부강간은 두 사람만 있는 은밀한 장소에서 일어나는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수사와 재판이 일어나는 부작용은 없느냐”고 묻자 이 부장은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은 보호의무 방기”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관련 판례는 이혼에 동의하는 등 파탄에 이른 부부 간에는 강간이 성립하지만, 아직 정상적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부부사이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흉기로 위협한 상황이나 국민 법 감정 등을 검토해 충분히 심리한 뒤 판결을 내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