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31 22:46
나무에 목을 매달아 사람을 죽였다. 그 발치에 앉은 군인이 천연덕스럽게 시체를 바라본다. 잘 만들어진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는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1746~1828)가 1810년에서 20년 사이에 제작한 판화 앨범, '전쟁의 참화' 중 한 장면이다.
82점의 판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고야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물론 과거에도 전쟁을 그린 그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실제로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참혹한 전쟁의 실체를 묘사한 건 고야가 처음이다.
- 프란시스코 고야, 궨전쟁의 참화궩 중 36번 판화 - 1812~1815년, 에칭과 아쿠아틴트, 15.8×20㎝.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물러나게 하고,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왕위에 앉혔다. 이후 독립을 위한 스페인 반군과 시민의 산발적인 게릴라전이 6년 동안 계속됐다.
고야는 처음에는 점령군에 반기를 든 스페인 민중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목격한 전장에서는 프랑스인이나 스페인인이나
결국 별 차이 없이 광기와 공포에 눈이 먼 채 극도의 폭력과 잔인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었다.
그는 시체에 난도질을 해대는 사람들, 기아 속에 허덕이는 아이들,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이성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일, 증오와 복수심이 세상을 지배할 때 발생하는 일들이다. 물론 '전쟁의 참화'는
고야의 생전에는 출판될 수 없었고, 그의 사후 35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림으로만 봐도 끔찍한 것, 그것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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