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19 23:23
이 압도적 존재감, 사진기도 포착 못했을 것
누구나 카메라 앞에 서면 갑자기 양팔이 거추장스럽다. 팔을 내릴지 올릴지, 손가락을 펼지 말지 고민하다가 어정쩡한 자세가 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유력한 일간지 '주르날 데 데바'의 사주(社主)였던 루이-프랑수아 베르탱의 초상화를 주문받고, 포즈를
고민하다 몇 년을 보냈다. 좌절한 나머지 스튜디오에 주저앉아 울기를 몇 번, 베르탱이 직접 나서서 다독이기도 몇 번 하고서야
마침내 포즈를 결정했다.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베르탱 초상'… 1832년, 캔버스에 유채, 116.2×94.9㎝,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베르탱은 두툼한 어깨를 세우고 강인한 두 손을 펼쳐 허벅지에 얹었다. 그 위압적인 체구가 발산하는 기세에 의자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다. 앵그르는 현대의 어떤 카메라로도 잡아낼 수 없을 주인공의 외모와 내면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노년에 접어든 베르탱의 굵고 가는 주름살, 이마를 지나가는 혈관과 허룩해진 앞머리 등은 하나하나 돋보기로 들여다본 것처럼
뚜렷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당파로 활동하다가 입헌군주제인 7월 왕정을 적극 지지했던 베르탱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주도하던 상류층 부르주아이자 영민한 사업가였다. 그의 단호한 눈빛, 차가운 듯 자신감 있는 미소, 압도적인 존재감은 그가
이룬 지위에서 온다.
이 작품 이후, 앵그르에게는 초상화 주문이 쇄도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 역사화를 그리고 싶어했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과
고귀한 정신을 전달하는 역사화와 달리 초상화는 단점으로 가득한 개인을 그릴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앵그르가 그린
'베르탱 초상'은 다만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를 보여주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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