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13 22:55
마른 가지 뚫고 나온 꽃잎, 생명의 기운
1890년 1월 31일, 빈센트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동생 테오 부부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이의 이름은 그의 이름과 똑같은
빈센트 빌렘. 이 세상 누구보다 각별하게 아끼던 동생에게서 조카를 본 화가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그 기쁨을 한 점의 그림에 담았다. 맑은 옥빛 하늘 아래, 소담하게 피어 오른 작고 하얀 꽃송이들을 그린 '아몬드 꽃'
이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새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이 그림에서는, 겨우내 메말랐던 나뭇가지를
힘차게 뚫고 솟아난 작은 꽃잎들을 올려다보며 환희에 찬 얼굴로 새 생명을 축복했을 화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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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고흐 '아몬드 꽃'…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3.5x92㎝,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 소장.
당시 반고흐는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발작과 환각 증상이 두려운 나머지,
그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안정을 되찾은 그는 옆방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물론 반고흐의 병실과 스튜디오를 마련해 준 것은 테오였다.
밝고 산뜻한 색채, 뚜렷한 윤곽선, 불꽃이 타오르듯 구불구불한 형태, 거리감과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평한 화면 등
'아몬드 꽃'에서 볼 수 있는 화풍이 바로 이 시기, 반고흐 작품의 특징이다.
그러나 1890년 7월 29일, 우울을 이겨내지 못한 반고흐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눈부시게 예뻤던 꽃들이 떨어진
자리에 풍성하게 열렸을 아몬드 열매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극도로 상심한 테오 또한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지금 이 그림은 반고흐 미술관에 걸려있다. 미술관 개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조카 빈센트 빌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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