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27 03:01 | 수정 : 2013.02.27 10:04
임진왜란 때 약탈 당한 유물… 국내 소장가가 사들여
-연구팀 "세종 모자 맞다"
"기존 발견 제자해와 문장 동일… 발톱넷 龍문양, 세종까지 사용"
-진품 논란도
"모자 보관상태 너무 깨끗하고 기존 임금 익선관 모양과 차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약탈당했던 세종대왕의 익선관(翼蟬冠·임금이 정무를 볼 때 쓰던 모자)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타났다. 이 익선관 속에는 특이하게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째 장인 '제자해(制字解)'가 새겨져 있고, 기존에 알려진 임금의 익선관과 다른 부분도 있어 진품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경북대 이상규 교수(국어국문학) 연구팀은 26일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개인 소장가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경북 성주군의 한 소장가가 매입해 작년 9월 들여온 익선관을 확보했다"며 "5개월여 고증을 거친 결과 세종대왕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교수팀은 이 익선관이 세종대왕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자해가 들어있는 것과 함께, 모자 하단에 새겨진 용 두 마리 문양의 발톱이 4개뿐이라는 점을 들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26년(1444년) 명나라로부터 오조용복(五爪龍服·발톱 5개가 있는 용 문양의 의복)을 하사받기 전에는 임금이 사조용의(四爪龍衣·발톱 4개)를 착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조용의와 훈민정음이 겹치는 기간은 세종 시기뿐이라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이 교수가 제시한 이 모자는 높이 27㎝(상단 5㎝·하단 22㎝)에 머리둘레는 57㎝ 크기였다. 현대 한국 남성 표준 머리둘레인 57.5㎝와 거의 같다. 겉면은 황토색 명주에 금색 실로 모란 넝쿨 문양에 임금 왕(王) 자와 만(卍) 자가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고, 그 속엔 삼베로 모자의 모양을 잡아 훈민정음 제자해를 숨기고 있었다. 속면은 겉면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붉은 도류사로 덮여 있었다. 연구팀은 "당시 사상이었던 오방(五方)·오색(五色)사상이 문양 속에 담겨 있고, 천지인을 뜻하는 세뜸 바느질로 만들어진 점도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 경북대 이상규 교수 연구팀이 공개한 세종대왕 익선관 하단에 새겨진 용문양. 세종은 사조용의(四爪괟衣)를 착용했기에 문양 속 용의 발톱도 4개다. 왼쪽 작은 사진은 익선관의 뒷모습. /경북대 이상규 교수 제공
가장 큰 특징은 모자 속에 숨겨진 훈민정음 제자해. 연구팀은 "모자 속에 숨겨진 글귀들은 내시경을 통해 조사했으며, 이미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의 제자해와 동일한 문장이 있는 것을 일부 확인했다"면서 "오랜 세월 동안 모자 속 종이와 천이 들러붙어 제자해에 대한 완전 분석은 못했지만, 이 부분의 연구는 차차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품 여부를 가리기 위해 더 면밀한 고증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익선관의 보관 상태가 너무 깨끗하고, 기존에 알려진 임금의 익선관 모양과 다소 다른 점도 많다는 것이다. 또 모자 속의 제자해 역시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소장자가 국가 기관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앞으로 복식전문가 등이 참여해 철저한 고증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며 "진품으로 확인될 경우 일본의 문화재 약탈 과정,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 왕실 임금의 복제사 등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27일 오후 경북대 글로벌관에서 세종대왕 익선관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제자해(制字解)
글자를 만든 과정에 대한 풀이.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해례본에서 첫째 장 이름을 ‘제자해’로 표기하고 훈민정음의 제작 원리를 구체적으로 풀이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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