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곤장맞은 벗에게… 겸재는 ○○를 그려줬다

yellowday 2013. 2. 27. 17:48

[겸재·단원·혜원 화첩 첫 공개… 동산방화랑 '조선 후기 화조화展']
어려움 빠진 이병연에게 보낸 겸재의 10폭 '백로도첩' 등 당대 화가 23人 작품 선보여

겸재 정선의 백로도첩 중 '갈대와 수련과 쇠백로'. /동산방화랑 제공

꽃과 새, 풀벌레 등을 그린 화조화(花鳥��)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랑방에 걸어두고 즐기는 그림이었다. 미물을 돋보기로 확대한 듯 그려놓아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은 그러나 사대부나 아녀자의 여기(餘技)로 여겨져 산수·인물화에 비해 학계에서도, 미술 시장에서도 대접받지 못했다.

조선 후기 화조화 8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음 달 12~31일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조선후기 화조화전: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이다.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 1769),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 등 17세기 후반~20세기 초를 풍미한 화가 23명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 기획 및 작품 감정을 맡은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특히 겸재·현재·단원·혜원 등의 화첩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겸재의 10폭짜리 '백로도첩(白鷺圖帖)'. 쪽물 들인 푸른 종이에 흰 호분(胡粉)으로 백로를 그렸다. 서 있거나, 잠자거나, 먹이를 낚아채는 다양한 모습이다. 푸른 종이를 사용함으로써 흰 백로의 자태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태호 교수는 "그림 중 한 폭에 '겸재가 일원(一源)을 위해 그리다'라고 쓰여 있는데, '일원'은 황해도 배천군수 이병연의 자(字)로, 겸재가 이병연에게 그려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병연이 1729년 6월에 쓴 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29년경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시 50대였던 정선의 활달한 필력이 드러나는 수작(秀作). 이태호 교수는 "결백함과 장원급제의 상징인 백로를 여러 마리 그려 친구에게 준 것은 당시 행정처리 잘못으로 곤장 100대를 맞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이병연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밖에 짙고 활달한 표현이 특징인 심사정의 화훼초충화, 김홍도가 안기찰방(安奇察訪)으로 부임한 1784년 안동의 막강한 사족(士族)인 고성 이씨 집안 임청각(臨淸閣) 주인에게 그려준 수금·초목·충어(水禽·草木·蟲魚) 화첩 등도 소개됐다.

이번 전시작 80여점은 대부분 박우홍 동산방화랑대표가 소장가 6명으로부터 빌려온 것. 고미술품이 대중에 나올 때 항상 제기되는 것이 위작(僞作) 우려. 이태호 교수는 "이번 출품작은 모두 진작(眞作)임을 보증한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과 이정우 한국관상조류협회장에게 감수를 받아 그림에 나오는 식물과 조류의 이름을 일일이 밝힌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02)733-5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