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그의 집 '네모'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이 드나든다

yellowday 2013. 2. 20. 08:52

입력 : 2013.02.20 03:06

[건축 거장들, 나의 대표작] [5] 건축가 조병수의 '심심촌'
땅과 인간의 공생 모색하는 心心村, 언덕을 깊이 3m로 파내 지은 '땅집'
中庭 위에 네모 천장 뚫은 'ㅁ자 집', 경사지 위 직사각형 올린 '마을집'
"사각형은 자연을 가장 잘 담는 틀"

건축가 조병수
야트막한 동산이 어깨동무하듯 겹쳐져 있는 경기도 양평군 수곡리. 이곳엔 몇 발자국만 오르면 네모 반듯한 '구덩이'가 있는 작은 언덕이 있다. 가로세로 14m×17m, 깊이 3m의 단단한 콘크리트 벽체에 둘러싸여 지하 깊이 파들어간 거대한 직사각형 상자. 거친 지하 수조인 듯, 옛 왕조의 고분(古墳)인 듯,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이 공간에는 좁은 앞마당과 작은 집이 긴장감 있게 들어서 있다. 건축가 조병수(56·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씨의 '땅집'이다.

경기도 화천 '이외수 집필실'과 서울 광화문 '트윈트리' 등을 설계한 조병수씨는 이 '땅집'을 비롯해 총 3개의 건물이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했다. '땅집'에서 50m쯤 올라간 언덕에 솟아 있는 'ㅁ(미음)자 집', 또 거기에서 50여m 정도 떨어진 마을회관 '마을집'이다. 이른바 '심심촌(心心村)'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집이에요. 하늘과 땅이 통하는 집이기도 하지요."

2004년(ㅁ자 집)과 2008년(마을집), 2009년(땅집) 잇따라 완성된 집들은 모두 하나의 정서에서 출발한다. 땅에 대한 깊은 관심, 땅과 하늘의 관계에 대한 조명, 건축이 자연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라는 관점이다. 특히 땅에 대한 관심은 지극하다. "땅은 어머니이기도 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공간이죠." '건폐율(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비율) 0%'란 독특한 기록을 남긴 '땅집'이 탄생한 배경일 것이다.

건축가 조병수씨의 경기도 수곡리‘ㅁ(미음)자 집’지붕 모습. 한겨울 눈이 콘크리트 지붕 위를 하얗게 덮었다. 가운데 뚫린 중정으로 눈발이 날린다. 아래 사진은‘ㅁ자 집’의 내부. 콘크리트 지붕을 받친 나무 기둥이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을 연상시킨다. /사진가 황우섭·김종오
건물들은 지극히 단순한 네모상자를 모티브로 한다. 마당을 앞에 두고 땅 속에 네모상자를 박아넣은 땅집, 네모 상자 안에 작은 네모를 파낸 ㅁ자 집, 경사지를 그대로 살린 계단식의 긴 네모 상자 모양 마을집이다. "사각형은 형태보다 공간이 두드러지는, 기능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틀(프레임)이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과 계절, 하늘과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비슷한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세 건물의 인상은 다르다. 건축가가 각각의 쓰임과 의도에 따라 모두 다른 소재와 접근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14m짜리 직사각형 건물인 ㅁ자 집의 경우, 보 없이 30㎝ 두께의 콘크리트 지붕을 올린 뒤 그 아래를 고목(古木) 기둥 10개로 받쳤다. 네모 반듯한 중정(中庭)에 여과 없이 쏟아지는 비와 눈, 햇살은 말 그대로 서정적일 것이다.

언덕을 파고 그 밑에 박힌 직사각형 건물‘땅집’. 터를 파며 나온 흙으로 집 벽체를 만들었다. 아래는 경사지를 살린 계단식 지붕이 두드러지는‘마을집’. /사진가 황우섭
'땅집'은 터를 파며 나온 흙을 활용해 지은 흙집이기도 한데, 흙은 곱게 다져 5㎝ 두께로 쌓고 그걸 60번 반복해 3m 높이로 쌓아올렸다고 한다. 마당과 집을 감싸는 콘크리트 벽체엔 터를 다지며 자른 소나무 기둥을 박아 넣어 "나무가 썩으면 이끼와 풀이 자라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6평에 불과한 좁은 집은 흙과 종이, 나무만으로 만들었고, 높이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방문들은 "허리와 고개를 숙이도록 하는 '겸손함의 장치'"다. '마을집'의 계단식 지붕은 마을 주민들의 공용 공간이자 수곡리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즐기는 야외 데크가 된다.

3개 건물을 이으면 삼각형이 그려지는 '심심촌'에서 건축가는 종종 머리를 식힌다. 특히 시인 윤동주의 시 낭송회를 연다는 땅집의 경우, 그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한창 일 많고 정신없을 때, 대학 시절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이 떠오르더라고요. 자기 성찰이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내가 나를 제대로 돌아보며 살고 있는 건지…. 그래서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처럼 집을 만든 건데, 보세요. 내가 자기 반성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여전히 앞만 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영 자신이 없네요…."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