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25] 에드워드 루샤, '실제 크기'

yellowday 2013. 1. 18. 23:10

대량의 수신인에게 무차별로 살포된 광고 메시지는 쓰레기, 즉 '정크 메일(junk mail)'로 분류되어 자동 삭제된다. '정크 메일'과 같은 말이 '스팸 메일(spam mail)'이다. 결국 '쓰레기'와 동일시되어버린 '스팸'은 미국 호멜사(社)에서 제조한 햄 통조림.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선물 세트로 각광받건만, 정작 원산지 미국에서는 정크 푸드의 대명사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a·1937~)의 1962년작 '실제 크기(Actual Size)'〈사진〉는 가로·세로 길이가 모두 2m에 가까운 큰 그림이다. 텅 빈 캔버스의 한가운데에 '실제 크기'로 정교하게 그려진 스팸 깡통이 노란 불꽃을 분사하며 혜성같이 날아든다. 그 상단에는 다시 한 번 낯익은 색감과 익숙한 글자체로 '스팸(SPAM)'이라고 적혀 있다.

루샤는 이처럼 대중적인 상품 로고들을 작품에 즐겨 활용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부당한 취급을 받을지언정 소중한 음식인 스팸에 대한 연민이라든가 대량생산된 인스턴트 식품에 대한 냉소처럼 흔히 우리가 미술품에서 기대할 만한 개인적인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루샤는 그저 '스팸'이라는 단어와 그 상품을 무척 진지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작품을 접한 관객은 '싸구려 음식'과 '진지한 미술' 사이의 괴리에서 당황하게 된다. 상단의 '스팸'이라는 글자는 비현실적으로 확대돼 본래의 의미가 희석되고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생경한 반면, 하단의 사실적인 그림은 다시 그 단어를 평범한 생활 속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처럼 '미술'과 '일상'의 경계선을 파고드는 것이 루샤 작품의 특징이다. 덕수궁 미술관의 전시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에서 루샤가 이 작품 제작의 사전 작업으로 촬영한 흑백 사진 '스팸'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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