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의 수신인에게 무차별로 살포된 광고 메시지는 쓰레기, 즉 '정크 메일(junk mail)'로 분류되어 자동 삭제된다. '정크 메일'과 같은 말이 '스팸 메일(spam mail)'이다. 결국 '쓰레기'와 동일시되어버린 '스팸'은 미국 호멜사(社)에서 제조한 햄 통조림.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선물 세트로 각광받건만, 정작 원산지 미국에서는 정크 푸드의 대명사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a·1937~)의 1962년작 '실제 크기(Actual Size)'〈사진〉는 가로·세로 길이가 모두 2m에 가까운 큰 그림이다. 텅 빈 캔버스의 한가운데에 '실제 크기'로 정교하게 그려진 스팸 깡통이 노란 불꽃을 분사하며 혜성같이 날아든다. 그 상단에는 다시 한 번 낯익은 색감과 익숙한 글자체로 '스팸(SPAM)'이라고 적혀 있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108/16/2011081601891_0.jpg)
작품을 접한 관객은 '싸구려 음식'과 '진지한 미술' 사이의 괴리에서 당황하게 된다. 상단의 '스팸'이라는 글자는 비현실적으로 확대돼 본래의 의미가 희석되고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생경한 반면, 하단의 사실적인 그림은 다시 그 단어를 평범한 생활 속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처럼 '미술'과 '일상'의 경계선을 파고드는 것이 루샤 작품의 특징이다. 덕수궁 미술관의 전시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에서 루샤가 이 작품 제작의 사전 작업으로 촬영한 흑백 사진 '스팸'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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