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찌를 듯한 빨간색 바탕에 짧은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I shop, therefore I am(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사진>.' 미국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1945~)의 작품이다. 수세기 전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쇼핑하느라 바쁜 나머지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반값 할인 받고, 한정 수량 '득템'하고, 판매 종료 5분 전 '대박 세일' 챙기려면 하루가 짧은데, 언제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하겠는가.
작품의 흑백 사진 속 손가락이 원래 들고 있던 것은 신용카드일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신용카드는 한 인간의 '존재'를 증빙한다. 신용카드의 등급과 종류에는 소유자의 직업과 연봉은 물론이고 자주 가는 커피숍이나 애용하는 주유소 등의 소소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가 소비하는 한갓 물건들로 치환되는 시대에 우리는 '국민'이나 '사회인'보다는 '소비자'로서의 삶을 가장 성실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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