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93] '革命의 아이콘'이 된 가족의 비극

yellowday 2013. 1. 15. 17:48

 

입력 : 2013.01.13 23:09


'革命의 아이콘'이 된 가족의 비극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을 뽑으라면 18세기 말의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48~1825)가
몰표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이라는 것이 '권력지향적'이라는 뜻이라면 말이다. 그는 루이 16세의 총애를 받던 왕실 화가였지만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자 혁명당원이 되어 왕을 단두대로 보냈고, 이후 나폴레옹에게 충성하다가 그가 실각한 뒤에는 외국으로 망명하여

안락하게 살았다. 이처럼 격변의 시기에 늘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다비드의 작품은 시대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크 루이 다비드 '근위병이 아들들의 시체를 브루투스에게 돌려주다' - 1789년, 캔버스에 유채, 323×422㎝,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前夜)에 완성되었다. 로마사에 등장하는 브루투스는 기원전 508년 왕정을 폐하고 공화제를
확립한 정치인으로, 그로부터 약 500년 후에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조상뻘이다.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들이 왕정복고를
꾀하는 반역에 가담했음을 알고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다비드는 아들들의 시체가 브루투스의 집으로 운구되는 극적인 순간을
그렸다. 그림 왼쪽, 로마를 상징하는 여신상의 그늘 아래 앉은 브루투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사형 집행령을 손에 움켜쥐고 있다.
그러나 포개놓은 두 발은 그가 지금 얼마나 힘겹게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 반대편에는 슬픔에 몸부림치는 브루투스의 아내, 즉 죽은 아들들의 어머니와 딸들이 있다. 브루투스와 여인들의 사이, 그림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텅 빈 의자다. 나라를 위한 희생이 이 가정에는 비극이 됐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대혁명과 함께
공화정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비록 그 이후 다비드의 행보가 대혁명이 추구했던 공화정의 이상과 달랐을지라도, 작품은 스스로 말하는 힘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