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4] 이젠하임 제단화

yellowday 2013. 1. 5. 09:27

기독교 미술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구세주가 인간으로 태어나 받은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하는 테마일 것이다. 그 중 어느 작품도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사진·1510~1515년)만큼 충격적인 것은 없다.

어둡고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나무를 마구 잘라 만든 거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가시관을 쓰고 고통에 못 이겨 뒤틀린 자세로 매달려 있다. 몸은 이미 무겁게 늘어져 십자가의 양쪽이 휘어져 있으며, 입은 열려 있고, 못이 박힌 손가락은 갈라져 위로 향해 뻗치고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애제자 요한과 심하게 몸이 휘어지면서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양과 세례 요한이 있는데 그의 손가락은 "그는 더 커지고 나는 더 작아진다"는 라틴어로 쓴 글귀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격심한 고통을 보여주는 십자가 상을 의뢰한 곳은 독일의 이젠하임에 있는 성 안토니 수도원의 병원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피부가 썩는 병을 앓는 환자들, 예를 들면 괴저병·한센병 환자들, 또 1490년대부터 유럽에 많이 퍼지기 시작한 매독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이미 초록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피부는 괴저병 증상과도 흡사해 보인다.

당시에는 병이 심한 환자들은 팔이나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는데, 환자들이 처음 치료를 받을 때 이 그림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 쾌유를 빌게 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신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여러 그림이 겹쳐진 이 제단화 중앙 부분을 열면, 그 안쪽에는 밖의 음울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밝은 분위기의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면이 나타난다. 환자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약속하는 의도로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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