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격심한 고통을 보여주는 십자가 상을 의뢰한 곳은 독일의 이젠하임에 있는 성 안토니 수도원의 병원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피부가 썩는 병을 앓는 환자들, 예를 들면 괴저병·한센병 환자들, 또 1490년대부터 유럽에 많이 퍼지기 시작한 매독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이미 초록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피부는 괴저병 증상과도 흡사해 보인다.
당시에는 병이 심한 환자들은 팔이나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는데, 환자들이 처음 치료를 받을 때 이 그림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 쾌유를 빌게 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신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여러 그림이 겹쳐진 이 제단화 중앙 부분을 열면, 그 안쪽에는 밖의 음울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밝은 분위기의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면이 나타난다. 환자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약속하는 의도로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