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3] '게릴라 걸스'

yellowday 2013. 1. 5. 09:26

미국의 미술사학자 H.W.잰슨이 1962년에 '미술의 역사'라는 개설서를 출간했을 때 학계에서는 대환영했다. 약 600여 쪽에 1000점의 작품 사진이 포함된 이 책은 동·서양의 미술사를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다룬 방대한 저서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곧 대부분의 미국대학에서 미술사 교재로 사용되었다. 잰슨의 책이 비판을 받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말 페미니즘 운동이 미술에 파급되면서였다.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들은 '미술의 역사'에는 여성미술가의 작품이 단 한 점도 없으며, 그것은 뿌리 깊은 남성위주의 역사관, 또는 남성들의 편견에서 왔다고 보았다. 잰슨은 이에 대해 자신의 책에 들어갈 만한 여성미술가는 한 명도 없다고 일축했다.

여성미술운동이 본격화되고 여러 단체가 결성되면서 여성미술인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제도나 관습 때문에 여성미술가들이 차별당했고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가장 급진적인 그룹은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였다. 익명의 여성미술가들의 모임인 '게릴라 걸스'는 커다란 고릴라 마스크를 써 자신의 신분을 비밀에 부쳤다. 고릴라 마스크는 게릴라와 비슷한 발음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글과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나타낸 포스터를 거리 곳곳이나 버스에 붙였고, 대학이나 학회, 전시장에 나타나 유인물을 배포했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사진>는 이들의 가장 유명한 포스터다. 이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여성작가의 작품은 전체 소장품의 5%에 불과하지만 누드 작품의 85%는 여성 누드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원저자인 잰슨이 죽은 후 현재까지 네 번의 개정판이 나온 '미술의 역사'는 처음보다 여성미술가의 작품을 훨씬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에 조사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여성작가의 작품은 아직도 5%에 불과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의 수는 훨씬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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