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얀 반 에이크의 '성모와 재상 롤랭'
15세기 플랑드르 지역 최고의 화가였던 얀 반 에이크의 '성모와 재상 롤랭'<1435년>은 부르고뉴의 재상(宰相) 니콜라 롤랭이 주문해 오텅에 있는 '노트르담 뒤 샤스텔' 성당에 기증한 작품이다. 천국의 궁전을 나타내는 화려한 실내에서 롤랭은 두 손을 기도자의 자세로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의 뒤에는 천국 여왕의 왕관을 든 천사가 있고, 무릎에 앉아 있는 아기 그리스도는 롤랭에게 축복을 내린다. 봉헌자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거의 대등하게 마주 보도록 하나의 장면에 그려져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성당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위상을 나타낸다. 이는 롤랭과 같이 성당에 많은 돈을 기부한 경우에만 가능했다.
'성모와 재상 롤랭'의 정교하고 풍부한 묘사는 시각적으로 큰 즐거움을 준다. 아름다운 직물로 된 의상과 반짝이는 보석의 질감 등은 아주 세심하게 그려졌다. 깊고 선명한 색채는 인물이나 사물에 둥근 입체감을 부여하고, 겹겹이 발라진 유액은 은은한 광택을 주면서 빛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은 저 멀리 배경의 파노라마같이 펼쳐지는 도시 풍경으로, 화가의 상상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자세하게 그려졌다. 화면 중앙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수수께끼 같은 작은 두 인물은 천국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은 천국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한눈에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