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0] 봉헌자 롤랭의 초상

yellowday 2013. 1. 5. 09:23

종교적 작품을 그리스도나 마리아 또는 성인에게 봉헌하는 사람을 봉헌자(donor)라고 한다. 작품에는 봉헌자의 초상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봉헌자는 처음에는 성인(聖人)이 나오는 종교적 장면과 분리되어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거나, 훨씬 작은 크기로 그려졌다. 그러나 15세기에 이르면 종교적인 주제에 성인들과 같이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온 가족이 함께 표현되기도 했다.

얀 반 에이크의 '성모와 재상 롤랭'

15세기 플랑드르 지역 최고의 화가였던 얀 반 에이크의 '성모와 재상 롤랭'<1435년>은 부르고뉴의 재상(宰相) 니콜라 롤랭이 주문해 오텅에 있는 '노트르담 뒤 샤스텔' 성당에 기증한 작품이다. 천국의 궁전을 나타내는 화려한 실내에서 롤랭은 두 손을 기도자의 자세로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의 뒤에는 천국 여왕의 왕관을 든 천사가 있고, 무릎에 앉아 있는 아기 그리스도는 롤랭에게 축복을 내린다. 봉헌자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거의 대등하게 마주 보도록 하나의 장면에 그려져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성당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위상을 나타낸다. 이는 롤랭과 같이 성당에 많은 돈을 기부한 경우에만 가능했다.

'성모와 재상 롤랭'의 정교하고 풍부한 묘사는 시각적으로 큰 즐거움을 준다. 아름다운 직물로 된 의상과 반짝이는 보석의 질감 등은 아주 세심하게 그려졌다. 깊고 선명한 색채는 인물이나 사물에 둥근 입체감을 부여하고, 겹겹이 발라진 유액은 은은한 광택을 주면서 빛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은 저 멀리 배경의 파노라마같이 펼쳐지는 도시 풍경으로, 화가의 상상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자세하게 그려졌다. 화면 중앙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수수께끼 같은 작은 두 인물은 천국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은 천국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한눈에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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