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지타의 1947년 작‘나의 꿈’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일본은 전쟁화 전담기구를 설립하고 전쟁기록화, 또는 일본군의 전쟁을 영웅화한 성전화(聖戰畵)를 220여점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들은 군에 헌납되어 순회 전시되었다. 유명한 스타 후지타는 군부가 가장 눈독들이던 화가였다. 그는 전쟁화가로 위촉되어 16점의 대작을 제작했다. '앗츠 섬 옥쇄(玉碎)' 같은 작품에서 그는 치열한 전투의 장면을 웅장한 구성과 뛰어난 사실적인 묘사로 재현했다. 후일 자신의 행위는 전시하(戰時下)의 국민으로서 의무를 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전 이후 전쟁화가들은 전범으로 몰렸고 가장 규탄을 받은 화가는 후지타였다.
1949년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이름을 존경했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따서 레오나르도 후지타로 개명했다.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후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의 미술관에 기증했으며, 다시는 일본에 돌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