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55] 그랜드 투어

yellowday 2013. 1. 5. 07:28

젊었을 때에 다닌 여행만큼 세상을 배우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 해외여행의 체험이 젊은이들의 교육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시작된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된 18세기부터였다. '그랜드 투어'로 불리는 이 여행은 주로 영국의 부유층 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젊은 귀족의 자제들이 교사를 대동하고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이탈리아 등지를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여전히 서양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 여겨지던 로마였다.

'그랜드 투어'는 반드시 젊은 청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고 여행객 중에는 미술애호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이탈리아에서 기념품으로 흔히 사온 것은 유명 도시 및 유적을 사실 그대로 세밀하게 그린 '베두테(vedute·情景畵)' 회화였다. 특히 카날레토(1697~1768)는 영국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했던 베두테 화가로, '산 마르코 광장'(·1740년경)에서 그는 베네치아의 유명한 명소를 반짝이는 광선과 색채로 거의 마술처럼 똑같이 그려내는 능숙한 기술을 보인다.

그랜드 투어의 여파는 영국 내에서 국내여행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웨일스나 스코틀랜드 등지의 자연을 소개하는 여행안내서나 가보지 못한 지방의 경치를 그림으로 소개하는 '그림으로 보는 여행' 류의 책들이 출간되었고 그런 곳의 풍경을 그린 수채화가 팔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는 화가들이 여행하면서 쉽게 그릴 수 있었고 또 그림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묘한 농담의 조절로 신선한 대기와 광선을 숙달되게 그린, 투명하고 생생한 풍경화들이 제작되어 인기를 얻자 곧 아마추어 수채화가들도 전문 화가들처럼 여행지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 들어서서 영국에는 수채화 협회가 구성되었고,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급속히 많아졌다. 수채화는 젠틀맨이 갖춰야 할 교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런 전통은 아직도 영국사회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처칠 경이나 찰스 왕세자의 수채화 솜씨는 보통 수준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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