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는 수녀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소포니스바 안귀솔라와 같은 몇몇 여성 화가들이 있었으나 초상화나 정물화와 같이 제한된 주제를 그렸다. 여성 화가가 극소수였던 가장 큰 이유는 미술의 기본적인 훈련이었던 누드모델을 그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활약상이 보이는 여성 화가는 아버지나 남편이 화가라서 그들에게 배우거나 화실에서 작업할 수 있었던 경우였다.
-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남성들과 비교해 손색없이 걸출했던 첫 번째 여성 화가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3)이다. 그 역시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기초 훈련을 받았으나 원근법 교습을 위해 아버지는 딸을 친구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보내는 실수를 범했다. 아르테미시아는 타시에게 강간을 당했고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으며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인물들은 대부분 구약에 나오는 강인한 여성이다. 재판 직후에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12)는 유대 여성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다. 극적인 광선과 고통에 일그러진 홀로페르네스의 생생한 얼굴 표정은 아르테미지아가 이 그림을 통해 심리적인 복수를 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기도 한다. 그 후 그는 역사화나 종교화와 같은 대작을 그리면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기록은 당시에는 별로 많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미술사학계에서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재발견된 아르테미시아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전설적인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