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9 03:00 | 수정 : 2012.11.29 06:17
日침략 받은 조선 배경 발레, 빈에서 이례적 5년 장기공연… 악보·기록 찾아
4막9장 발레… 1897년 초연 - 日에 맞선 조선 왕자와 연인 얘기
궁정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평단 찬사, 악보 팔 정도로 인기
- 발레가 공연된 궁정오페라하우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스케치. 1869년 개관 기념 오페라‘돈 조반니’의 공연 당시 모습이다. /한국학진흥사업단 제공
19세기 유럽 예술의 수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국인의 애국심을 소재로 한 발레가 5년간 정식 레퍼토리로 공연돼 대중적 사랑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악보와 관련 자료가 발견됐다. 동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유럽에서 일본 배경의 오페라 '나비부인'(1904)이나 중국 소재 '투란도트'(1926)보다 앞서 한국적 소재가 유럽인의 사랑을 받았음이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19세기 유럽에 한류 바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단장 정윤재)의 지원으로 악보를 발굴한 박희석 박사(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박사 후 연구원)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클래식 전문 출판사 창고에서 '코레아의 신부' 악보를 찾았다"고 밝혔다. 발굴된 악보는 4막9장 발레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1897)'의 총보(總譜) 543쪽 분량으로, 모든 악기의 악보와 지휘 방법이 기록돼 있다.
악보와 함께 발견된 발레의 줄거리 텍스트(15쪽 분량)에 따르면,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의 왕자가 나라를 구하려고 전쟁터에 나가고, 그를 사랑하는 조선 여인이 목숨을 걸고 함께 전장(戰場)에 뛰어드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시대적 배경은 청일전쟁(1894~1895) 시기로 추정되지만, 등장인물은 코레아의 왕자, 왕자를 사랑하는 여인, 사랑의 여신, 일본군 장군, 코레아의 장교, 의병, 보초, 기생 등이다. 당시에는 대개 지휘자용 총보를 한 부만 만들었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것이 유일한 원본으로 추정된다.
작곡가는 오스트리아 궁정발레단장이던 요셉 바이어(1852~1913)였으며, 극본은 요셉 하스라이터와 하인리히 레겔이 함께 썼다. 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표지엔 기모노를 입은 여성, 태극기가 걸려 있는 돛단배의 모습이 보인다.
- 18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연된 발레‘코레아의 신부’악보 표지. 왼쪽 돛단배에 태극기(점선 표시)가 꽂혀 있다. /한국학진흥사업단 제공
첫 공연은 1897년 5월 22일 당시 궁정오페라하우스(Wiener Hofoper·현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열렸고, 당일 오페라하우스는 만석(滿席)으로 기록돼 있다. 발레 작품이 평균 2개월, 길어야 2년 공연되던 시절에 5년간 꾸준히 공연됐다는 점은 이 발레가 상당한 인기였음을 보여준다는 게 박 박사의 설명.
무대에는 대형 아치 8개와 대형 암벽 구조물 4개가 섰고, 의상은 312벌이 투입됐다. 현재 브로드웨이 최고 인기 뮤지컬 '위키드'(350벌)와 맞먹는 수준. 남아 있는 의상 드로잉은 '한국인 할아버지'로 명명된 한 점. 흰 바지저고리 차림에 곰방대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궁정오페라하우스는 당시에도 최고로 꼽혔던 공연장 중 하나. 1869년 5월 개관 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올라갔다. '코레아의 신부'가 공연되던 시기는 오스트리아의 근대 작곡가 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가 오페라하우스의 예술감독이었다. 말러는 1897년 4월 상주 지휘자(resident conductor)로 부임했고, 10월부터 예술감독을 맡았다.
박희석 박사는 "첫 공연 끝난 후 일부 무곡(舞曲)이 판매용 악보로 나왔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며 "평단의 찬사와 시판용 악보의 존재를 볼 때 대한제국기에 유럽 빈에 한류 바람이 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발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학과장 이은정 교수)와 보쿰대 한국학과가 공동 진행하는 해외 한국학 중핵(中核) 대학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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