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의詩 모음

오리 / 백석

yellowday 2012. 11. 14. 00:20

오리 / 백석


오리야 네가 좋은 청명(淸明) 밑께 밤은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어둡다누나
오리야 이 때는 따디기가 되어 어둡단다

아무리 밤이 좋은들 오리야
해변벌에선 얼마나 너이들이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해변땅에 나들이 갔든 할머니는
오리새끼들은 장뫃이나 하듯이 떠들썩하니 시끄럽기도 하드란 숭인가

그래도 오리야 호젓한 밤길을 가다
가까운 논배미 들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이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
나는 내 마을 그 아는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말소리같이 반가웁고나
오리야 너이들의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고나

오리야 나는 네가 좋구나 네가 좋아서
벌논의 눞 옆에 쭈구렁 벼알 달린 짚검불을 널어놓고
닭이짗 올코에 새끼달은치를 묻어놓고
동둑넘에 숨어서
하로진일 너를 기다린다

오리야 고운 오리야 가만히 안겼거라
너를 팔어 술을 먹는 노(盧)장에 영감은
홀아비 소의연 침을 놓는 영감인데
나는 너를 백동전 하나 주고 사오누나

나를 생가하든 그 무당의 딸은 내 어린 누이에게
오리야 너를 한쌍 주드니
어린 누이는 없고 저는 시집을 갔다건만
오리야 너는 한쌍이 날어가누나


따디기 :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 무렵.
멕이기에 :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다'는 뜻의 평북 방언. '쏘다니다'의 뜻으로도 쓰임
장뫃이 : 장날이 되어 장터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붐비는 것.
논배미 : 논의 한 구역으로 논과 논 사이를 구분한 것.
눞 : 진흙탕. 늪. 못
닭이짗 올코 : 닭의 깃털을 붙여서 만든 올가미.
새끼달은치 : 새끼다랑치. 새끼줄을 엮어서 만든 끈이 달린 바구니.
동둑 : 못에 쌓는 큰 둑. 동둑. 방죽.
하로진일 : 하루종일.
소의연 : 소의 병을 침술로 낫게 해주던 사람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