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31 22:56
프랑스에는 크고 작은 문학상이 3000개 넘게 있다. 11월엔 가장 권위 있는 공쿠르상을 비롯해 대여섯 개 주요 문학상이 잇따라 수상자를 발표한다.
공쿠르상 수상작은 40만부 넘게 팔리고, 다른 이름난 문학상 수상작도 10만~20만부는 나간다. 문학상이 많으니 한 작품이 상을 여럿 타는 일도 생긴다.
2004년엔 소설 '프랑스적 삶'이 페미나상과 프낙상을 함께 거머쥐었다. 2007년 철학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리브레르상을 비롯해
네 개 문학상을 독식했다.
▶우리 문단에서도 소설 한 편으로 한 해에 문학상 셋을 휩쓴 작가가 엊그제 처음으로 나왔다. 정영문의 장편 '어떤 작위(作爲)의 세계'가
1월 한무숙문학상을 시작으로, 지난달엔 동인문학상을 받더니 대산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어떤 작위의 세계'는 삶의 덧없음에 지루해진 작가 자신이
자잘하고 쓸모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작품이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사소한 일상을 열일곱 개 이야기로 꾸며낸 솜씨가 대단하다"고 평했다.

▶마흔일곱 살 정영문은 16년 동안 작가로 활동해 왔지만 상복(賞福)이 박했다. 13년 전 동서문학상을 탄 뒤 문학상 최종심에서 번번이 아깝게 떨어지기만
했다. 정영문은 지금까지 소설책 열두 권을 냈지만 다 합쳐 2만부가 팔렸을 뿐이다. 그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전통적 소설 문법을 따르지 않은 채
이야기가 해체된 소설을 써 왔다. 프랑스어로 번역돼 부조리(不條理) 문학을 이끈 카프카·카뮈·베케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받았다.
▶정영문은 외국 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꾸려 왔다. 한 해 네댓 권씩 기계처럼 번역하다 건강을 해쳤고 우울증과 불면증까지 앓았다.
키 185㎝에 몸무게 62㎏. 그러면서도 창작을 놓지 않은 그는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어떤 작위의 세계'를 재미만 좇는 소설관(觀)에 복수하는 심정으로 썼다고 한다.
▶정영문은 "내게 정치란 재미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몇몇 잘 팔리는 작가들이 정치판의 훈수꾼으로 혹은 '말발'있는
돌격대로 나서는 문단 분위기에 휩쓸린 적이 없다. 프랑스와 달리 우리 서점에선 문학상 수상작이 지난 5년 사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없다.
정영문의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는 단편이 주역(主役)이 돼버린 우리 소설 풍토를 깨고 문학상 3관왕에 올랐다.
이젠 독자들이 도대체 왜 심사위원들이 문학상 관행을 깨고 장편 하나에 상을 세 개나 줬는지 궁금해서라도 정영문 소설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中 '한 자녀' 정책의 앞날 (0) | 2012.11.03 |
---|---|
신문 콘텐츠의 힘 (0) | 2012.11.03 |
심판 매수 (0) | 2012.10.31 |
케냐 마라톤 (0) | 2012.10.30 |
'현대판 중국 청백리' (0) | 2012.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