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평양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yellowday 2012. 10. 26. 08:32

입력 : 2012.10.25 22:43

1994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난 카터가 영화 테이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선물했다. 당 간부들이 영화를 돌려봤고 "멋있다"는 감상평이 돌았다. 남북전쟁의 처절한 광경을 보며 그들은 '고난의 행군'을 떠올렸다. 99년엔 원작소설이 번역됐다. 한 탈북자는 "평양 대학생들이 소설에 홀딱 빠졌다"고 전했다. 그 무렵 영화 '젊은이의 양지' 원작인 '미국의 비극'도 나왔지만 인기는 그만 못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금서(禁書) 목록에 올렸다. 고관대작 아내가 청년 장교와 사랑에 빠져 남편과 자식을 버리는 '불륜'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닌은 "러시아혁명의 거울과 같은 작품"이라고 높이 샀다. 농노 해방에서 러시아혁명까지 귀족 계급의 몰락을 그려낸 사회소설로 봤다. '안나 카레니나'는 북한에서도 1950년대에 번역됐다. 혁명을 묘사한 고리키의 '어머니', 오스트로프스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보다 인기가 높았다.

▶북한에선 주민 통제의 고삐를 조인 60년대 말부터 외국 문학 소개가 뜸하다 80년대 중반 숨통이 트였다. 셰익스피어, 뒤마, 발자크, 스탕달, 헤밍웨이, 샬럿 브론티, 아서 코난데일 같은 작가들이 이때 소개됐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빨간 것과 검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북한에서 외국 소설은 전문 번역가가 직역(直譯)하기보다 작가동맹 작가들이 북한 실정에 맞춰 의역(意譯)을 한다. 새로 쓰다시피 한 대목도 꽤 된다고 한다.

▶작가와 제목만 전하는 외국 소설도 많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실연과 자살을 다뤄서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이라는 제목만 상식 책에 쓰여 있다. 러시아혁명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간략한 줄거리만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아일랜드 좌파 작가 에델 보이니치의 '등에'가 많이 읽혔다. 가톨릭 신부와 사생아를 통해 '종교는 위선이며 민족 해방에 방해가 된다'는 메시지 탓이다.

▶AP가 북한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베스트셀러라고 보도했다. 90년대 열풍이 아직까지 이어져 널리 읽히는 모양이다. 이 책을 읽은 암시장 상인은 "북한에서는 강자만 살아남는데 그게 바로 소설의 교훈"이라고 했다. "남북전쟁 때 고통을 겪는 남부 미국인의 모습에서 북한 독자가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디는 법을 공감한다"고도 했다. 가장 미국적인 소설이 평양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 일을 문학적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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