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9.10 22:41
영국 런던에는 러시아어로 발행하는 신문이 네 개나 된다. 런던에 사는 러시아인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과거엔 정치적 망명객이 주로 영국에 정착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러시아 신흥 부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석유 재벌이자 영국 축구 구단 첼시의 소유주 아브라모시프가 대표적이다. 러시아인들은 런던에서 2000만달러 넘는 값에 거래되는 고급 주택의 60%를 사들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러시아 부자들이 북적대면서 런던을 '런던그라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런트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유조선 선단을 거느린 회사다. 그 소유주 존 프레드릭슨은 노르웨이 최고 부호이자 영국의 아홉째 부자이며 키프로스 최대 갑부이기도 하다. 프레드릭슨이 세 나라 부호 명단에 올라있는 것은 그가 노르웨이 사람이지만 런던에 살고 있고 키프로스 국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프런트라인은 노르웨이 오슬로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면서 본사 소재지는 버뮤다로 돼 있다. 모두 세금을 덜 내려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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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에선 억만장자들의 국적 변경이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소득세 최고 세율을 올리거나 부유세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자 부자들이 잇따라 세금이 적은 나라로 도피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세브린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싱가포르로 국적을 옮긴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을 빚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엔 프랑스 부호들이 '세금 망명'에 나서 시끄럽다. 프랑스 최고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 회장까지 벨기에 시민권을 신청했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사회당 출신 올랑드 대통령이 소득세 최고 세율을 75%로 높이려 하자 부유층이 일으킨 '반란'이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세금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프랑스 기업과 부유층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하겠다"며 프랑스의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선 로레알 그룹 상속녀를 포함한 부호 열여섯명이 부자들에게 특별 세금을 매기라고 자청했다. 재정 적자 해소에 따르는 고통을 부자들이 더 많이 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세금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는 부자가 해마다 1만명을 넘는다고 할 정도로 증세(增稅)에 대한 저항이 만만찮다. 인간은 누구나 세금에 대해 본능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1% 대 99%'의 갈등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부자 증세를 밀어붙이는 데엔 많은 어려움과 부작용이 따른다.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합의는 나오기 힘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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