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여대생 ROTC

yellowday 2012. 9. 8. 07:27

입력 : 2012.09.07 23:17

1970년대 어느 봄날, 서울대 대학본부 앞 잔디밭에 학생들 300여명이 모여 반정부 집회를 했다. 집회 도중 갑자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 바보티시! 너 나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ROTC 복장의 한 학생이 막 대열에 끼여 앉으려는 참이었다. 사방에서 "쫓아내!" 소리가 쏟아졌다. ROTC 학생은 얼굴이 벌게져 자리를 떴다. 유신(維新)과 군사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교련 반대와 병영집체훈련 거부가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한 세대가 흐른 요즘 ROTC 입단 평균 경쟁률은 남학생 3 대 1, 여학생은 7 대 1에 이른다.

▶'학군사관후보생'이라 부르는 'ROTC'는 원래 예비역장교훈련단을 뜻하는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자다. 19세기 미국이 이를 도입할 때 취지는 장교를 임관시켰다가 곧바로 전역시킨 뒤 유사시 작전에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에 5만명, 2차대전에 15만명, 6·25 전쟁에 1만8000명의 학군장교가 활약하면서 ROTC는 현역장교의 70%를 공급하는 장교 양성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미국서는 그동안 육군참모총장 3명을 배출했고, 뉴욕대 ROTC 출신 콜린 파월은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이 됐다.

▶한국은 1961년 ROTC를 시작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우수한 자원을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훈련시켜 전력(戰力)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게 매력이었다. 창설 후 반세기 동안 17만명의 초급장교를 배출하면서 국방의 큰 축(軸)이 됐다. 매년 임관하는 장교의 80%, 최전방 소대장의 70%가 ROTC 출신이다. 그러면서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진작 여성에게 문을 열었는데 ROTC만 금녀(禁女)를 고집한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2010년 12월 숙명여대 등 6개 대학에 여성 ROTC가 인가되면서 벽이 허물어졌다. 올해부터는 ROTC가 있는 110개 대학 전체로 여학생 지원이 확대됐다. 작년에 59명, 올해 245명의 여학생이 후보생이 됐다. 마침내 내년에 첫 여성 ROTC 소위들이 탄생하게 된다.

▶여성 ROTC 1호인 숙명여대 ROTC가 올 동·하계 군사훈련에서 110개 대학 중 종합성적 1위를 올렸다. 수류탄 투척(남자 20m·여자 15m)만 빼고는 화생방·각개전투·유탄발사기 등 전 과목을 남자와 같은 조건에서 겨뤘다니 대단한 투지다.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지만 다음도 쉽지 않다. 기존 여성 장교들이 행정관·정훈관 같은 업무를 주로 맡는 것과 달리 ROTC는 일선에서 사병들과 함께 생활하는 초급지휘관이 돼야 한다. 훈련에서 1등 했으면 실전 근무에서도 1등 실력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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