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25 22:32
이광수는 장편 '단종애사'에서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집권한 역사를 다뤘다. 그는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당한 날 신숙주의 아내 윤씨가 목숨을 끊었다고 썼다. 변절한 남편이 부끄럽다며 다락방에 올라가 목을 맸다고 묘사했다. 이광수는 18세기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실린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삼았다.
▶실제 역사는 달랐다. 세조실록 2년 1월 23일자엔 신숙주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喪)에 조효문을 보내 호상하게 하다.' 윤씨가 숨진 것은 사육신 사태가 일어나기 다섯 달 전이었다. 그때 신숙주는 세조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 있었다. 신숙주 아내를 둘러싼 야사는 정사(正史)와 전혀 다른 허구였던 셈이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를 불쌍히 여긴 야사도 있다. 세조는 공주의 남편이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에 가담했다며 능지처참했다. 분이 덜 풀린 세조는 공주를 관비(官婢)로 삼아 왕실에서 쫓아냈다고 야사는 전해왔다. 그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경혜공주가 계속 공주로 살았다는 고문서를 공개했다. 공주가 죽기 사흘 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며 공주 인(印)까지 찍은 분재기(分財記)다. 조선시대 공주 도장이 찍힌 문서는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실제 역사는 달랐다. 세조실록 2년 1월 23일자엔 신숙주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喪)에 조효문을 보내 호상하게 하다.' 윤씨가 숨진 것은 사육신 사태가 일어나기 다섯 달 전이었다. 그때 신숙주는 세조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 있었다. 신숙주 아내를 둘러싼 야사는 정사(正史)와 전혀 다른 허구였던 셈이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를 불쌍히 여긴 야사도 있다. 세조는 공주의 남편이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에 가담했다며 능지처참했다. 분이 덜 풀린 세조는 공주를 관비(官婢)로 삼아 왕실에서 쫓아냈다고 야사는 전해왔다. 그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경혜공주가 계속 공주로 살았다는 고문서를 공개했다. 공주가 죽기 사흘 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며 공주 인(印)까지 찍은 분재기(分財記)다. 조선시대 공주 도장이 찍힌 문서는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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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 전하는 정사가 권력의 기록이라면 야사는 민심이 반영된 설화(說話)라 할 수 있다. 신숙주의 변절을 못마땅히 여긴 민심은 그의 아내가 자살해 남편의 죗값을 대신 치렀다는 야사를 짓고서야 조금이나마 분이 풀리지 않았을까. 퇴계를 성인(聖人)으로 떠받든 민심은 그를 좀 더 가까운 인간으로 느끼려고 기생과의 러브스토리를 상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야사를 소설이나 영상매체가 역사인 양 우기거나 착각하게 만드는 일은 따져볼 일이다. 안방에 들어가는 TV 사극이 상상력을 너무 발휘하는 건 오히려 야사의 순박한 맛을 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