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바느질하는 여인(Woman sewing)'1880 - 82. 메리 카사트)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침자(針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人間婦女)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지 우금(于今) 이 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우리 시삼촌(媤三村)께옵서 동지상사(冬至上使) 낙점(落點)을 무르와, 북경(北京)을 다녀 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親庭)과 원근 일가(遠近一家)에게 보내고, 비복(婢僕)들도 쌈쌈이 나눠 주고, 그 중에 너를 택(擇)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되었더니, 슬프다,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無數)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無心)한 물건(物件)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身世) 박명(薄命)하여 슬하(膝下)에 한 자녀(子女) 없고, 인명(人命)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生涯)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婢僕)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五色)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婦女)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燈盞)을 상대(相對)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 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冠帶)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 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 없고 하릴 없다. 편작(扁鵲)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 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녁 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바늘이여.
이해와 감상
바늘 하나에 이런 섬세한 조문을 쓸 정도라면 이 글을 쓴 사람의 심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할 것인가? 지금처럼 물건과의 관계가 일회용인 시대에 바늘 하나에 대한 지은이의 섬세한 감성은 지금처럼 매사에 실용성만 강조하고 일회용처럼 매사를 대하는 현대인에게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로 받아 들여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끼던 바늘을 의인화하여 조문을 바치는 작자의 심성을 보면서 현대인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좋은 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조침문이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조침문은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고전수필로 국문체이고 일명‘제침문’이라고도 한다.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쓴 제문(祭文)이다. 미망인 유씨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작자는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인로 생각되는데, 그 문장실력과 고사(故事)에 능통한 점으로 보아, 비록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처지이나 어려서부터 독서와 문안편지쓰기로 실력을 닦아온 양반집 딸인 듯하다.
고어(古語)의 자취 및 표기법상으로 볼 때, 조선조 말 내간체 작품들과 별 차이 없으므로 보아 연대는 19세기 중엽으로 볼 수 있다. 서두를 “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모씨가 두어 자(字)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라. ” 라고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늘과 함께 했던 긴 세월을 회고하고 바늘의 공로와 바늘의 요긴함, 바늘의 모습과 재주를 찬양한 뒤 부러지던 날의 놀라움과 슬픔, 그렇게 만든 자신에 대한 자책과 회한, 그리고 내세의 기약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한 개의 바늘을 가지고 27년을 썼다는 사실은 조심성 깊고 알뜰한 여심을 말해 준다. 한편 자녀 하나 두지 못한 외로운 여인이 생계를 그것에 의지하고, 반생을 동고동락하여 왔음을 전제로 이 작품을 이해하여야 될 것이다.
“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거슬릴 때도 있나니. ” 라고 하여 자식과 비복보다 낫다고 한 점, 또 바늘이 부러지던 순간, 잠시 동안 혼절하였다는 표현에서 바늘에 대한 작자의 뛰어난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랴는 듯하고, 뚜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하도다. ” 라는 표현은 바늘을 생명체요 유정물(有情物)로 인정하고 표현한 것인데, 그 표현은 신기(神技)에 가깝다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제문에 얽힌 작자의 애절한 처지와 아울러 뛰어난 문장력과 한글체 제문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수필. 《제침문(祭針文)》이라고도 한다. 바늘을 의인화한 것으로, 형식은 제문(祭文)으로 되어 있다. 작자는 사대부(士大夫) 가문의 청상과부인 듯하다. 자녀도 없이 오직 바느질에 재미를 붙이며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날 쓰던 바늘이 부러지자 슬픈 심회(心懷)를 누를 길 없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첫머리를 <유세차(維歲次)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모씨가 두어 자(字)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로 시작, 이어 바늘과 더불어 지낸 27년의 회고 및 공로와 바늘의 요긴함, 바늘의 모습과 재주 찬양, 부러지던 날의 놀라움과 슬픔, 그렇게 만든 자신에 대한 자책과 회한, 그리고 내세(來世)의 기약으로 끝을 맺고 있다. 문장력이 뛰어난 한글체 제문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작품의 이해와 감상2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지은 고전 수필로,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 '규중칠우쟁론기'와 더불어 여류 수필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함께 했던 긴 세월의 회고, 바늘의 공로와 재질, 바늘이 부러진 날의 놀라움과 슬픔, 자책, 회한 등을 제문(祭文)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작품이다. 미망인 유씨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 사항은 모두 미상이다. 이 작품은 제문에 얽힌 작자의 애절한 처지와 아울러 뛰어난 문장력과 한글체 제문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출처 : 한계전 외 4인 저 '문학교과서')
유아이사 (伯仁이 由我而死)에 얽힌 고사
백인(伯仁)이 나로 말미암아 죽었다 함이니 다른 사람이 화(禍)를 받은 것이 자기 때문일 때 한탄하여 이르는 말로
옛 중국의 진(晉)나라에 백인(伯仁)이라는 사람과 그의 친구 중에 왕도(王導)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일 때문에 왕도라는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 백인은 친구 왕도를 변호하는 글을 썼고, 왕도는 이 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백인은 바로 이 글 때문에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백인이 글 때문에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을 당시, 글 덕분에 새 삶을 얻은 왕도는 꽤 높은 자리에 있었다. 말하자면 백인의 목숨을 구해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왕도는, 백인이 자기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백인이 죽음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구해 줄 마음을 먹지 않았다. 백인이 죽은 다음 왕도는, 백인이 자기를 위해 쓰고 올린 글을 읽고 나서야 크게 뉘우쳐 깨닫고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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