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25 22:31
지금은 속초에서 은거 생활을 하는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가 작년 이맘때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했다. 40여년 전 유학 생활을 했던 곳이다. 빈에 도착하자마자 옛날 살던 곳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대학 시절 탔던 49번 전차 노선이 그대로 다니고 있었다. 거리 모습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전차 종점에서 갈아탄 마을버스도 149번 그대로였다. 정류장 시간표를 보니 한 시간에 네 번씩 다니던 40년 전 시간표와 똑같았다.
▶옛집 앞에 내렸는데 작은 2층 집의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집 앞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시계를 보니 빈 대학에서 출발해 1시간 20분이 지나있었다. 1960년대 통학할 때 걸리던 시간과 같았다. 빈이란 도시 자체가 지하철 노선이 몇 개 생긴 걸 빼고는 거의 옛 모습을 갖고 있었다. 집 근처 빵집, 세탁소, 구멍가게도 예전 그 자리에 있었다. 안 전 부총리는 "시간이 멈춰 서 있는 도시 같았다"고 했다. 그가 느꼈을 편안함이 짐작이 간다.
▶내 고향 수원시는 40년 전 중학교 다닐 때 인구가 23만명이었다. 지금은 110만명까지 늘어났다. 이따금 가보지만 천지개벽을 했다고 할까, 어렸을 적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고향인데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익숙했던 골목길, 익숙했던 건물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섭섭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정신 건강검진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설문 조사를 통해 스트레스,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걸로 고통받고 있지 않은지 확인한 후 문제가 있으면 전문 상담을 받도록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 성인 일곱 명 가운데 한 명꼴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 질환을 겪는다. 오스트리아는 10만명당 자살률이 12명인데 우린 28명으로 OECD 가운데 제일 높다. 스스로를 파괴해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려 할 만큼 절박한 스트레스를 겪는 한국인이 많다.
▶세상이 너무 확확 변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스트레스의 한 원인은 아닐까. 우리 세대만 해도 원조받은 밀가루로 만든 빵을 얻어먹던 시절을 살았지만 한국은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 많은 변화를 단기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으니 거기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보통 아니었을 수밖에 없다. 남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고, 더 실적을 내야 하고, 더 지위를 올리려고 기를 쓰다보니 하루하루 삶이 전쟁터가 됐다. 국가가 정신 건강 대책을 내놓겠다고 할 만하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는 게 별로 없는 세상에서 좀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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