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청각靑覺) 전월석 스님의 詩모음

yellowday 2012. 6. 8. 07:03

 

슬픈기도

 

            청각스님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고독에 체해

밀어내다가 밀어내다가

금새 다시 한뼘의 거리

대낮의 어둠을 잠재운 어둠이

먹빛 풀어

호수에 달과 별 그리기 전에

먼저 찾아와

서성이던 그리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은 여행길에서

쓸쓸한 마음을 밀어 넣었던

기다림의 긴 시간들

차라리

하늘 멀어

걸어 오고 걸어 갈 수 없는

흔들리는 슬픔도 기도가 됩니다

 

 

그렇게 아시구려

 

              청각스님

 

하늘이 울어

창가에 빗물 흐르거든

그대 그리워 흘리는

나의 눈물인 줄 아시구려

새 한마리 찾아와

구슬피 울어 대거든

보고파 부르는

나의 노래라 여기시고

그대를 부르는

나의 손짓으로 생각하구려

창가에 별빛 보이거든

고운 그대 모습 지켜보는

나의 눈빛이라 생각하구려 

 

 

어이 친구

 

           청각스님

 

사십이 넘으면 말야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고 자꾸 쓸쓸해 지는 나이래

별을 보고 별처럼 눈을 뜨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잦아지고

꿈결처럼 흘러간 추억들이

가슴에 옹이로 박혀

술잔속에 눈물을 뚝뚝 떨구며

가을같은 계절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나이래

사십이 넘으면 말이야

버리고 싶은 상처

흉터로 남은 기억들도

가끔씩은

빛바랜 일기장 속에서 꽃으로 피어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는 나이래

사십이 넘으면 그리 된다네

 

 

 

법당에서

 

          청각스님

 

 

나는 보았다

 

중생들의 애절한 기도가

불전함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는 것을

 

 

 

몽정

 

      청각스님

 

빨아먹은 내 피를 꽁무니로

쏟아 내는 줄 모르고 머리를 박고 있는

모기의 무모한 식욕처럼

통제되지 않는 꿈속

잡지속 요염한 포즈의 어느 여인들

내 안 곳곳에 비밀스레 숨어 있다

은밀한 눈빛으로 유혹하더니

서릿발 같은 맹세의 모가지를 비틀어

어금니 깨물며 지켜내야  할

수상한 비밀 만들어 버렸다

 

 

위선

 

     전월석 스님(청각)

 

 

나의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으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나의 혀로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 주는 척

부드러운 방송용 맨트로 주절거리는

나의 혀가

귀신보다 더 무섭다

 

 

오늘밤도 가슴 비워 놓겠습니다

 

           청각스님

 

 

어둠보다 더 깊은

고독으로 찾아 오는 그대에게

허망한 가슴은

몇 번을 넘어졌다 일어섰는지

송곳처럼 찔러오는 그리움에

체념을 잡아 당겨 도리질 해 보지만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듯 와르르 주저 앉고 맙니다

손에 꼭 쥔 그리움을

하늘가에 풀어 놓는 날은

빈가슴 눈물로 가득 채워

먼길 떠나는 날이 되겠지요

하얗게 표백된 심장만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흔적 없이 그대가 다녀간 가슴에는

주름하나 더 늘어나겠지만

오늘 밤도 가슴 비워 놓겠습니다

 

 

흔적

 

         글/청각

 

너로부터 벗어난 일이

119 구급차를 두어번 타고 나서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그리고

살아온 날들 아니면 살아갈 날들이

가시로 박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출렁거렸던 시간들

묵언중이던 기억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가슴을 들여다 보며

미친년처럼 통곡하며 울다가 웃다가

너의 흔적들이 조금씩 건조해지며

바람이 되던 날

그때야 알겠더라

역시

세월이 약이라던

유행가 가사의 뜻을

 

 

모기

 

    청각

 

 

거대한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가미가제처럼

무모하게 돌진해와

날카로운 키스를 퍼붓는 아가씨야

당신의 사랑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귀한 목숨 보존 하시려면

잠시 기다리시게나

아직 불도 끄지 않았으니

 

 

 빈 노트

 

              청각

 

군데군데 구멍난 기억

기워 내라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너를 활짝 펼쳐들고

애를 써 본들

너덜너덜했던 그 치욕의 삶들이

그리 쉽게 꿰매지겠는가 말이다

뻘건 두 줄 사선으로 그어진

신용불량자의 법적 예고 통지문처럼

호적에 붉은줄 올리고

막가파가 되지 못해 한탄했던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라니

이 세상이 모두 노랗게 보이던 그 분노를

얼굴에 철판깔고 끄적거려 보라니

떠나는 길이 황천길 같아

자꾸 뒤돌아 보며

가슴에 흐르는 굵은 핏줄 툭툭 터져

목구멍으로 피를 쏟아내던

그 때 상처를 다시 헤집고

소금을 치라니

 

 

무제

 

    청각스님

 

 

잠이 오지 않는밤

눈을 감고 누워서 팔을 가슴이 얹고

한쪽 다리를

한쪽 다리위에 걸치고 흔들어 보았다

다리 하나만 흔드는데

왜 온 몸이 흔들리는 것인지

눈은 감고 있는데

보이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살 끝에서부터 짜릿짜릿 밀려와

눈 앞에 펼쳐지는 기억들

 

어짜자는 것인지

 

 

호기심

 

        글/청각

 

담장 밖을 기웃거리다

물벼락을 맞았다

 

 

 

 

갈대

 

    글/청각

 

나도

너같이

흔들리던 날 많았다

 

 

 

 

장미

 

           청각스님

 

내마음 담은

눈빛 외면하는 너를 안고

가시에 찔리던 아픔

잠깐 사이

너처럼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시도 때도 없이 찬물에 세수하던 일

 

또한

잠깐 사이

가시에 찔린 심장만

지금도

펄떡펄떡 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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