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15 23:03
한밤에 정전이 되면, 주위가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냉장고, 컴퓨터, 조명기구 등 쉴 새 없이 백색 소음을 발산하는 가전제품이 모두 꺼진 후에 찾아오는 적막은 너무나 낯설어 오히려 귀가 멍할 지경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 운동인 미래주의에 참여했던 화가이자 작곡가 루이기 루솔로(Luigi Russolo·1883~1947)는 이러한 '소음(騷音)'이야말로 현대적인 삶의 조건이며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기계문명 덕분에 현대인은 과거에 인류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복잡한 기계음을 감상할 수 있는 청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 루솔로 ‘자동차의 역동성’ - 1912~1913년, 캔버스에 유채, 104×140cm,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
루솔로는 이 그림을 완성하던 1913년에 '소음의 예술'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온갖 소음을 일으키는 '악기'를 개발하여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루솔로가 예상했던 대로 객석의 반응은 분노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눈은 쉽게 감을 수 있어도, 귀를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온갖 기계와 전자제품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우리가 소음을 피해서 살 수는 없는 법인데, 벗어나지 못한다면 괴로워하기보다는 즐기는 게 낫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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