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재기(四友齋記) **
- 글 / 허 균 -
- 해설/ 이웅재 -
재(齋)를 사우(四友)라고 이름 지은 것은… 벗하는 자가 셋이고, 내가 거기에 끼어들고 보니, 아울러 넷이 된 셈인 때문이다. 세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날의 선비는 아니고 옛사람이다.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여 세상과는 잘 맞지 않으므로, 요즈음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꾸짖고 떼 지어 배척하므로, 문전에 찾아오는 이가 없고 밖으로 나가도 더불어 함께할 사람이 없다.…
“벗이라는 것은 오륜의 하나, 나만 홀로 갖지 못했으니 어찌 심히 수치스럽지 아니하랴?”
…어디로 가서 벗을 구할 것인가? 어쩔 수 없어 옛사람 중에서 사귈 만한 이를 가려서 벗으로 삼을 수밖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진(晉)의 처사 도원량(陶元亮; 陶淵明의 또 다른 자가 元亮임)이다. 그는 한가하고 고요하며 평탄하고 소탈하고 국량이 넓어 세상일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고 가난을 편히 여기며 천명을 즐기다가 신선이 되듯 한생을 마쳤으니, 그 맑은 풍모와 빼어난 절개는 아득하여 나로서는 따라잡을 길이 없다. 나는 그를 지극히 사모하지만, 그의 경지에는 미칠 수가 없다.
다음으로는 당나라의 한림 이태백이다. 그는 세상을 초탈하여 고매하고 호탕하여 팔극(八極; 온 세상)을 좁다 하고 지체가 높은 귀인들도 개미 보듯 대하며 스스로 산수 간에 방랑하였으니, 내가 따라 가고자 부러워하는 처지이다.
그 다음은 송나라 학사 소자첨(蘇子瞻; 蘇軾의 字, 호가 東坡居士라서 흔히들 소동파라 칭함)이다. 그는 허심탄회하여 다른 사람과 경계를 두지 않으므로 현명한 이나 어리석은 이, 귀한이나 천한 이를 가림 없이 모두 그와 더불어 즐기니, 유하혜(柳下惠)의 화광동진(和光同塵)1)의 풍모가 있어 나는 이를 본받고자 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 세 분 군자의 문장은 천고에 떨쳐 빛나지만, 내 보기에는 모두가 그들에게는 여사(餘事; 별로 중요시하지 않은 취미 정도의 일)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취하는 바는 전자(인품)에 있지 후자(문장)에 있지 아니하다. …
나는 이정(李楨)2)에게 명하여 세 군자의 상을 원래의 모습과 똑 같이 그리게 하고, 이 초상에 찬(贊)을 짓고 그것을 석봉(石峯)3)으로 하여금 해서(楷書)로 쓰게 하였다. 매번 머무는 곳마다 반드시 좌석 한쪽에 걸어놓으니 세 군자가 엄연히 서로 마주보고 사물에 대하여 그 경중 따위를 품평(品評)하며 마치 함께 웃고 얘기하는 듯하여…그 생활이 괴로운 것을 알지 못하였다.…
아, 나는 진실로 글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 세 분 군자의 여사(餘事)에도 능하지 못하지만 성격마저 자질구레한 예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망령되고 어리석어 감히 그러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도 못한다. 오직 그분들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벗으로 삼고자 하는 정성만은 신령마저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그러므로 벼슬에 나가는 일과 그 거취는 은연중에 그분들과 합치되었다. 도연명이 팽택(彭澤)의 현령(縣令)이 되어 80일 만에 관직을 벗었는데, 나는 세 번이나 이천 석의 자리(곧 태수)에 임명되었으나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배척받아 쫓겨났다.…이태백은 심양(?陽)과 야랑(夜郞)으로 귀양가고 소동파는 대옥(臺獄)과 황강(黃岡)으로 귀양갔었다. …나는 죄를 지어 형틀에 묶이고 볼기맞는 고문을 받은 뒤 남쪽으로 옮겨지니, 아마도 조물주가 희롱하여 그 곤궁한 재액은 같이 맛보게 하면서도, 부여된 재주와 성품만은 갑자기 바꿀 수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복을 입어, 혹시라도 전야로 돌아가도록 허락된다면, … 내가 사는 집은 한적하고 외져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으며, 오동나무가 뜰에 그늘을 드리우고 대나무와 들매화가 집 뒤에 총총히 줄지어 심어져 있으니, 그 그윽하고 고요함을 즐기면서 북쪽 창에다 세 군자의 초상을 펴놓고 분향하면서 읍을 한다. 그래서 마침내 편액을 사우재(四友齋)라 하고 인하여 그 연유를 위와 같이 기록해둔다.…
해설:
*이글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 제6권에 실린 기(記)이다. ‘기(記)’는 수필로 분류한다.
최초의 한글소설〈홍길동전〉의 작자인 지은이 허균(許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학산(鶴山)·백월거사(白月居士) 등이며 본관은 양천이다. 초당두부의 원조로 알려진 허엽(許曄)의 막내아들로 승문원 사관으로 벼슬길에 오른 후 삼척부사·공주목사 등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반대자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 후 중국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에 가서 문명을 날리기도 했다. 한때 왕의 신임을 받아 예조참의·좌찬성 등을 역임했으나, 스승인 삼당시인(三唐詩人) 서출(庶出) 이달(李達)을 숭앙하여 그들과 어울리며 국가의 변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했다.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성수시화 惺?詩話〉·〈학산초담 鶴山樵談〉·〈성소부부고 惺所覆藁〉 등 일부만이 남아 전한다.
**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것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부분적 윤문 등은 해설자가 하였다.
註 :
1)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도 참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뜻. <老子>
2)이정(李楨:1578~1607); 조선 선조 때의 화가. 자는 공간(公幹). 호는 나옹(懶翁)ㆍ나와(懶窩)ㆍ나재(懶齋)ㆍ설악(雪嶽). 13세 때 장안사의 벽화를 그렸으며, 산수화와 인물화를 잘 그렸다. <산수도(山水圖)>, <한강 조주도(寒江釣舟圖)> 등이 있다.
3)한호(韓濩:1543~1605); 조선 선조 때의 명필가.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ㆍ청사(淸沙).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계의 쌍벽을 이루며, <석봉천자문(石峯千字文)>, <석봉서법(石峯書法)>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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