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6 22:16
선반 위에 화사한 꽃이 가득 피었다. 반짝이는 푸른 커튼이 그 앞을 가리고 있어, 이를 들추어 보려고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만지면 바스락댈 것처럼 생생한 커튼은 실은 그림이었다. 알고 보면 그 뒤에서 고운 향기를 뿜어내던 꽃다발도 그림이다. 네덜란드 미술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17세기, 아드리엔 반 데르 스펠트(Adrien van der Spelt·1630~1673)와 프란스 반 미에리스(Frans van Mieris·1635~1681)가 합동으로 그린 '커튼이 있는 꽃 정물화'(1658·사진)다.
이 둘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두 화가가 벌였던 그림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의하면 라이벌이었던 파라시우스와 제욱시스는 우열을 가리기 위해 서로의 역작을 공개하기로 한다. 포도를 그린 제욱시스가 먼저 그림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벗기자 진짜 같은 포도에 홀린 새들이 그림으로 달려들었다. 의기양양한 제욱시스는 파라시우스에게 빨리 커튼을 열어 그의 그림을 보여 달라고 했다. 사실 파라시우스가 그린 것은 '커튼'이었던 걸 모른 채 말이다. 승리는 당연히 새를 속인 화가의 눈마저 속여 넘긴 파라시우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아드리엔과 프란스는 대결 대신 협력을 선택했다. 꽃그림 전문이었던 아드리엔이 꽃을 맡고, 고급 드레스의 질감 표현에 특히 능했던 초상화가 프란스가 커튼을 그렸다. 관객들은 그들의 역작 앞에서 꼼짝없이 사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커튼에서 한 번, 꽃에서 또 한 번. 세상에 두 번이나 속임수에 넘어가고도 기분 좋을 일이 이 그림을 보는 일 말고도 또 있을까.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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