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31 23:31
1950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게이츠켈 재무장관은 한국전 참전에 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심했다. 그는 당 안팎 논란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제도(NHS)의 무상(無償) 원칙을 깨고 약을 살 때 환자도 일부를 내게 했다. 소득세도 올렸다. 들썩이는 여론을 달래려고 연금과 실직수당은 후하게 짰다. 그러나 약값 때문에 결국 정권이 흔들렸고 이듬해 총선에서 보수당에 졌다.
▶보수당의 버틀러 재무장관은 전임 게이츠켈의 정책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부의 재분배, 사회안전망 강화를 이어갔고 사유재산과 개인기업을 키우는 정책도 함께 폈다. 앞서 노동당이 보수당의 교육정책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듯, 보수당은 노동당의 개혁 기조를 그대로 따랐다. 1954년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두 장관을 '미스터 버츠켈'이라는 한 이름으로 불렀다. 두 당이 조금씩 온건한 행보로 이뤄낸 합의(合議) 정신은 '버츠켈리즘'이라는 단어를 낳았다.
▶2001년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뭐든 전임 클린턴과 다른 쪽 길을 걸었다. "클린턴이 하던 것만 빼면 다 좋다(Anything but Clinton)"는 'ABC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런 노선은 특히 미·북 관계, 중동정책 같은 외교·안보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은 '초당(超黨) 정치'의 전통도 갖고 있다. 국가가 중대한 일에 부딪혔을 때 정치 지도자들은 "당파적 경쟁심을 잠시 내려놓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나라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의 정강·정책을 바꿨다. "오로지 국민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복지국가·경제민주화 같은 말을 쏟아냈다. 이명박 정부와 차별 짓겠다는 듯 '선진화'와 '실용주의'라는 단어는 빼버렸다. 이 새옷 갈아입기를 언론은 '좌(左)클릭'이라고 불렀다. 민주통합당도 재벌세나 부자 증세처럼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겨간 정책을 내놓고 있어 여야 간 좌클릭 경쟁이 한창인 셈이다.
▶버츠켈리즘 정신으로 보수·노동 두 당이 주고받은 정책의 핵심은 교육·건강·고용에 있었다. 그러나 버츠켈리즘이 변질되면서 복지 만능 풍조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노조를 낳았고, 고비용·저효율의 만성적 영국병(病)을 앓게 됐다. '좌클릭·우클릭'은 소총 사격 때 조준선을 잘 맞춰 탄환을 명중시키는 게 목적이다. '국민의 마음'이라는 표적을 놓치면 좌클릭을 수백 번 해도 국민의 고통만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