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공산군과 계급장

yellowday 2011. 12. 28. 21:12

1920년대 말 마오쩌둥은 장제스에 반대하는 세력이면 누구든 끌어모았다. 지주는 물론이고 산적까지도 홍군(紅軍)에 받아들였다. 홍군은 계급도 계급장도 없었다. 마오의 군사참모 주더(朱德)는 유럽에서 마르크스를 공부한 총사령관이었지만 맨발로 다녔다. 부상병에게 자기 말을 내줬고, 부하들과 인사할 땐 모자를 벗어 맞절을 했다. 식량이 떨어지자 손수 풀뿌리를 캐먹었다. 국민당 정예군은 병력이 10배나 많았지만 홍군에게 판판이 깨졌다.

▶중남미 혁명가들이 마오의 무(無)계급 용병술을 벤치마킹했다. 쿠바 혁명의 주역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처음엔 제복과 계급장이 없었다. 유럽 쪽에서 티토가 이끌었던 유고 빨치산이나 소련의 대독(對獨) 빨치산도 계급 서열을 두지 않았다. 아프리카 혁명가들은 겸손을 떨었다. 리비아 카다피는 하수구에서 죽을 때까지 대령 계급을 고집했다. 육군 상사 출신으로 혁명을 일으킨 라이베리아의 새뮤얼 도는 죽을 때까지 '상사 대통령'으로 불렸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엊그제 대장 계급장을 달고 TV에 나타났다. 며칠 전까지 인민복 차림이었던 그가 대장 군복을 입은 모습이 갑작스러웠다. 김정은과 고모 김경희, 그리고 장성택까지 '로열 패밀리 3인방'이 대장 계급에 올라 김정일의 선군(先軍) 통치를 계속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리영호·김영춘·리용무 같은 군 수뇌부도 '왕별' 하나짜리 차수(次帥) 계급장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서 김정은의 좌우에 섰다.

▶옛 소련 지도자들이 레닌 묘 위에서 붉은 군대의 노동절 사열을 할 때도 가슴에 훈장이 수십 개씩 매달려 있었다. 서방 세계는 레닌 묘 위의 인물들이 서 있는 순서를 보고 권력 변화를 분석하곤 했다. 최고 실권자는 철저하게 '서열 정치'를 했고, 훈장이나 계급장은 그 상징이었다. 공산정권은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민중을 선동했지만 계급장과 훈장을 잔뜩 달고 있다 종말을 맞았다.

▶마오의 홍군은 가는 곳마다 농민들의 친구가 됐다. 6·25에 개입할 때도 중공군은 소대장·중대장 같은 직책만 있었고 계급장이 없었다. 그러나 독재에 물든 마오는 나중에 대원수나 원수 같은 최고 계급까지 만들었다. 체 게바라에게 대장 별을 붙여줬던 카스트로도 나중에 대장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었다. 민중이 야위는 만큼 독재자의 계급장은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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