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이별의 詩 모음

yellowday 2022. 5. 13. 21:49

녹기 전의 저 눈밭은

얼마나 눈부신가

지기 전의 저 꽃잎은

얼마나 어여쁜가

세상의 값진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리

사랑도
우리의 목숨도
그래서 황홀쿠나

(임보·시인, 1940-)


+ 이별노래

떠나가는 제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이별은
그냥 이별인 게 좋습니다

남은 정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갈 길을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움도
너무 깊으면 병이 되듯이
너무 많은 눈물은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됩니다

차고 맑은 호수처럼
미련 없이 잎을 버린
깨끗한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이별하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바람

헤어짐은 바람처럼 해야 한다.
바람이 나무와
바람이 별과
바람이 또 바람과 어떤 이별을 하던가.
그냥 스치어갈 뿐
뼈도 눈물도 남기지 않고
장삼 자락만 흔들지 않더냐.
세상 모든 것 떠날 때 찌꺼기를 남기건만
머문 적 없다고 바람은
자리마저,
자리마저 쓸어버리지 않느냐.
(구광렬·시인, 1956-)


+ 원시(遠視)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서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오세영·시인, 1942-)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늘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이었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조병화·시인, 1921-2003)


+ 별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

그대 꽃이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내 앞에 있는다 해도 차마
그대 눈치채지 못하고

나 또한 구름 되고 바람 되고
천둥이 되어
그대 옆을 흐른다 해도 차마
나 알아보지 못하고

눈물은 번져
조그만 새암을 만든다
지구라는 별에서의 마지막 만남과 헤어짐

우리 다시 사람으로는
만나지 못하리.
(나태주·시인, 1945-)


+ 기가 막혀서

이별이 힘들지 않을 만큼만
사랑을 하라니요
그럼 그게 어디,
사랑인가요?
(이풀잎·시인)


+ 부탁  

당신이 내게서
멀리 가시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인연이란 것이
무 자르듯
그렇게 싹뚝
잘리어진다면 모를까

당신이 내게 준
따뜻함이
아직 내 안에 있기에


당신을, 이대로
놓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굳이 가시려거든
내 안에 있는 당신의 기억
그 모두를
함께 가져가소서

차마
그리 못하시면
지금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주소서
(최원정·시인, 1958-)


+ 이별 노래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그대 뒷모습 닮은 지는 꽃잎의 실루엣
사랑은 순간일지라도 그 상처는 깊다
가슴에 피어나는 그리움의 아지랑이
또 얼마의 세월 흘러야 까마득 지워질 것인가
눈물에 번져 보이는 수묵빛 네 그림자
가거라, 그래 가거라 너 떠나보내는 슬픔
어디 봄산인들 다 알고 푸르겠느냐
저렇듯 울어쌓는 뻐꾸긴들 다 알고 울겠느냐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다
하르르하르르 무너져내리는 꽃잎처럼
그 무게 견딜 수 없는 고통 참 아름다워라
(박시교·시인, 1947-)


+ 떠남

떠남 너의 뒷모양은 언제나 쓸쓸하더라.
너는 젊음을 미워하고 사랑을 시기한다.
너는 어머니와 아들같이 친한 사이를 간섭하기를 유달리
좋아하더라.

사람들은 너를 위하여 산을 헐어 길을 닦고
물 위에 배를 띄운다.
너는 왜 아득한 모래 위에 혼자 앉아
로렐라이의 노래만을 부르고 있느냐.

나는 너를 잘 안다.
너는 나의 검은 머리털의 힘을 빼앗고
네가 사랑하는 寶石은 眞珠나 落葉보다 눈물이다.
네게 만일 세월의 친절이 없었던들

이를 무엇에다 쓰겠느냐?
떠남 너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더라.
네 앞에 自然은 빛을 잃고 汽笛은 사라지며
원수도 뉘우친다!

너는 왜 훌쩍훌쩍 울면서도 가고야 마느냐?
돌아서 너의 마음을 뉘우침이 좋지 않느냐?
아아, 떠남 너의 발자취를 덮을 땅 위의 바람과 눈이 영원히 없음을
너는 모르느냐?
(김현승·시인, 1913-1975)
 
이별과의 이별 / 김원경

우주 정원 어디쯤에서 한 점

열로 피어나면서 떨고 있을 흑점,
그것이 내 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다
이런 날 나는 나에게 문병을 간다
울음의 온도를 높여 불온한 별들을 마음에 띄우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
스타(STAR)는 일간스포츠에서나 떴지
가슴 한켠 별들을 띄우는 일은
이 별의 생태에 어긋나는 일이다
궤도를 이탈한 별처럼 나는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이 별에서 자유는 놀이동산에서
한번 쓰다 버린 자유이용권처럼 일종의 은밀한 계약이었다
나를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뒷문은 닫혀있고
세계는 항상 허수아비처럼 허수(虛數)로만 서 있었다
관계가 사라지면 잠들어 있던
부유물들이 어지럽게 역류한다


물방울이 표면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터지듯 이번 생을 견디고 있던 내가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상습적으로 올라온다
눈이 멀기 전 장님이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었을까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왔다
성지를 순례하듯
영혼이라는 안감을 걸치고 불구의 다리로
제 몸에서 나는 울음소리를 찾아 떠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이 낸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리는 우는 것이 아니라 울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980년 울산에서 출생.
경희대학 국문과 졸업.
2004년 《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정해진 이별 / 황학주

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행됐을 사랑이었습니다
진흙수렁에 화단 한 평은 올렸을 사랑이었습니다
내 몸만해도 벌써 말라
조만간 당신이 뒤져보지도 못했을 테지만
신음소리 없는 인연을 바랄 턱도 없었겠지만
사랑은, 병 깨는 소리에 놀라는
참 오래된 밥집만 남은 쓸쓸한 공원 같습니다
무변대핸데 라고 당신 말하겠지만
차라리 내게서 아주 멀리 가는 당신의 전부가
이제 첫 생에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 바다라는 구원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던 거지요
움푹한 영혼이 살았던 방바닥에
입맞춤 하나가 아직 일어나지 않지만
이제야 길을 잃어도 내가 없는 당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한』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등.
현재 아프리카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음.

 
  
 식후에 이별하다 /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天性)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컬럼비아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졸업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등


 
 그대 잘 가라 / 도종환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1954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84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등

 
 
<이별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아름다운 이별' 외

+ 아름다운 이별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

저 높은 곳의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
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빛날 수도 없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
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
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
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

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
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윤수천·시인, 1942-)


+ 사랑법 2

누군가 말했지
헤어져 있을 때 더 많은 축복이 있다고
함께 있을 때 내 님 오직 하나더니
헤어진 지금 온 세상 님으로 가득
(작자 미상)


+ 이별

마음 비우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리움 깊어갈수록
당신 괴롭혔던 날들의 추억
사금파리로 가슴 긁어댑니다
온전히, 사랑의 샘물
길어오지 못해온 내가
이웃의 눈물
함부로 닦아준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가슴 무덤에 생뗏장 입히시고
가신 당신은
어느 곳에 환한 꽃으로 피어
누구의 눈길 묶어두시나요
마음 비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습니다
아픈 교훈만
내 가슴 무덤풀로 자랐습니다
(이재무·시인, 1958-)


+ 이별(離別)에게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리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사라져
오오,
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어둠 속에
어둠 속에
寶石들의 光彩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김현승·시인, 1913-1975)


+ 마음에게

신록이여,
죽은 마음에 움트는 강철의 새 잎이여
나는 이제 어떤 이별도 껴안을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랑들이, 저렇게 많은 아픔들이
자기와의 투쟁을 통과하여 이제 막 연록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니
(이시영·시인, 1949-)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시인, 1933-2005)


+ 그대는 들으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감는 소리
그 깊은 속눈썹의 떨림을
그대는 들으소서

어둠 속에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는 소리
그대 들으소서

그대를 생각할 때면
혼자 흔들리던 그네처럼
내 마음, 허공 속에
흔들립니다

나의 태양, 나의 태양이여
이제는 돌아서야만 할 시간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대 잠시 돌아보던
노을 속에 적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점점 밝아지던 눈빛
그대만의 별을 찾아 헤매던
내 눈빛의 서러움
그대는 들으소서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그대는 들으소서... 들으소서...
(최옥·시인)


+ 나도 그랬듯이

머지 않아 그 날이 오려니
먼저 한마디 하는 말이
세상만사 그저 가는 바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다오
내가 그랬듯이

실로 머지 않아 너와 내가 그렇게
작별을 할 것이려니
너도 나도 그저 한세상 바람에 불려가는
뜬구름이려니, 그렇게 생각을 해다오
내가 그랬듯이

순간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많은 아름답고 슬펐던 말들을 어찌 잊으리
그 많은 뜨겁고도 쓸쓸하던 가슴들을 어찌 잊으리
아, 그 많은 행복하면서도 외로웠던 날들을 어찌 잊으리

허나,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행복하고도 쓸쓸하던 이 세상을
내가 그렇게 했듯이
(조병화·시인, 1921-2003)


+ 꽃샘추위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