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1.08.18 03:26
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카불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 수송기 C-17에 필사적으로 탑승하고 있다(왼쪽 사진).아프간 카불에서 카타르로 비행한 미 공군 C-17기 내부 모습. 800명을 태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익명을 전제로 한 미 국방부 관계자는 "실제 인원은 약 640명"이라고 말했다. / 트위터 Defense One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對)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철수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국익이 걸리지 않은 분쟁에 무한정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년 전 미군이 아프간을 점령한 것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9·11 테러 집단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천문학적 재원을 쏟아부으며 아프간에 계속 묶여 있기를 바랄 것”이라며 “그것은 미국의 안보 이익이 아니며, 미국 국민이 바라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치욕이었던 베트남 사이공 함락의 악몽을 재현시켰다고 비판하고, 당초 철군을 지지했던 국민 여론도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과 냉전 때처럼 두 개의 전면전을 치르거나 대비할 만한 힘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바이든 아닌 다른 대통령이라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바이든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을 미국이 대신 싸워 줄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는 “한국도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프간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도 그런 시각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아프간의 국력과 전략적 위치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자 비약이다. 국방장관이 일곱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만큼 엉망인 국군의 기강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프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따로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년에 걸친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은 끝났으며,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맞서는 것을 첫째 국가 이익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며 복원을 선언한 동맹 관계 역시 중국의 도발과 위협을 억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을 공동의 위협으로 설정했던 한미 동맹도 성격 변화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겨냥한 지역 안보 협력체인 쿼드(Quad)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은 보다 거세질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협력하지는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만 막아달라는 한국의 애매한 입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간에서 한국 대사관 직원과 현지 주민이 무사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도 미국과 미리 맺어 뒀던 양해각서가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 작동하는 국제사회 정글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 내려면 믿을 수 있는 강대국과의 우호 관계가 필수적이다. 남북 이벤트 정치에 앞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입체적 국가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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