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장관 후보자 아내의 도자기

yellowday 2021. 5. 9. 02:44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05.08 03:18 | 수정 2021.05.08 03:18

 

1976년 봄, 신안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나왔다. 800년 물속에 잠겨 있던 도자기 2만여 점이 세상 빛을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수출품이었다. 1000도 넘는 열을 가해 만드는 도자기는 당시 최첨단 제품이었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고작 구운 토기를 만들 때, 중국 은나라는 토기에 유약을 발라 고온에 구워냈다. 이 기술을 중국이 1000년 넘게 독점하며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당나라 청자가 이집트 유적지에서 출토된 적도 있다. 한반도엔 8세기 중반 안사의 난을 피해 도망 온 도공이 전수했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조선은 세계 양대 도자기 기술 보유국이었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작센 지역 선제후 아우구스트는 도자기 수집광이었다. 프로이센 왕이 소유한 중국 도자기 151점이 탐나 병사 600명을 내줬을 정도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겠다며 독일 남부 마이센의 고성(古城)에 연금술사를 가두고 도자기 제조법 연구를 지시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1709년 고온 제조 공정을 찾아냈고,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마이센 자기가 탄생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자기는 유럽에서 ‘하얀 금’이라 불렀다. 스카우트와 산업 스파이들을 통해 불과 반세기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2차대전으로 동독을 점령한 소련은 마이센의 공장 설비부터 뜯어 갔다. 치열한 기술 경쟁 덕에 200년도 채 안 돼 유럽 도자기 기술은 아시아를 넘어섰다. 중국·일본에 없던 에나멜 채색과 상감 기법을 선보였고 영국 본차이나처럼 고령토 대신 소의 뼛가루를 쓰는 재료 혁신도 이뤘다.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헝가리의 헤렌드, 영국의 웨지우드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탄생했다.

 

▶영국 도자기 성지라는 스토크온트렌트의 최대 고객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매장 입구에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가 적혀 있다. 한국에서보다 70% 싸게 명품 도자기를 살 수 있어 인기다.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아내가 대량 밀수한 로열 덜튼과 로열 앨버트 브랜드도 이곳에 매장을 갖고 있다.

 

▶도자기 기술은 지금도 최첨단 분야에 쓰인다.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을 벗어나거나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수천도 열을 견디는데 도자기의 내화 타일 기술이 활용된다. 이 분야에선 미국이 가장 앞섰다. 유럽이 도자기 신기술을 쏟아내고 미국이 지구 밖으로 인류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한국 고위 공직자 아내는 도자기 밀수에 열을 올렸다. 한때 세계 최고 도자기 기술 보유국이었던 나라의 씁쓸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