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가까운 D빌딩 사무실은 일부 외교관에게 '난민 캠프'로 불린다. 원래 해외 부임 준비로 잠시 인사 공백이 있는 외교관들이 임시로 쓰는 곳인데, 현 정부 출범 뒤엔 앞선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쫓겨난 외교관들이 북적거린다. 이들은 지난 10년 넘게 북미·북핵 업무 최전선에서 경험과 인맥을 쌓아온 엘리트지만 아무런 보직을 받지 못했다. 그저 "우린 적폐"라고 자조하며 시간을 낚고 있다.
▶전직 외교관들은 "대한민국 정부 역사에서 지금처럼 외교부의 존재감과 역할이 미미했던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권은 북핵 같은 핵심 외교정책에서 외교부를 노골적으로 '패싱'했다. 요직과 주요 공관장은 비외교관, 외교부 내 비주류, 캠코더 낙하산이 주로 차지했다. 속을 끓이던 외교관들도 지금은 '청와대에서 다할 텐데 뭘…'이라며 체념하고 있다고 한다. "장관부터 '외교 수장'이 아니라 '셀러브리티'의 삶을 즐기는 것 같다"고 수군대는 목소리도 나온다.
▶힘을 빼놓으니 얼도 빠진 것일까. 최근 외교부에서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일 듯싶다. 26년 전에 사라진 '체코슬로바키아' 국명을 쓰는가 하면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하게 했다. 지난달에는 보도 자료에 '발틱' 국가인 라트비아를 '발칸' 국가로 잘못 써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대사관 신설 의미를 홍보하는 자료에 정작 지역을 엉뚱하게 기재했다니 황당할 뿐이다. 직원 한 명이 모를 수는 있지만, 담당 과장·국장에 대변인실까지 체크하면서 걸러내지 못한 건 일에 열의와 흥미를 잃은 것이다.
▶강경화 장관은 취임 때부터 줄곧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을 강조해왔지만, 최근 전 직원들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을 더 가져야 한다'는 이메일을 보내 질책했다. 오늘은 '업무 효율화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주제로 직원들과 토론회도 갖는다고 한다. 분위기가 너무 느슨하다는 문제 제기다. 전 장관 때는 야근을 밥 먹듯 시켜 문제가 됐는데 지금은 완전히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
▶한 간부는 "외교부가 '오만하다' '잘난 체한다'는 욕은 많이 먹었지만 요즘처럼 '무능하다' '없어도 그만'이라는 소리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무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외교에 사활이 걸린 나라다. 그런 나라의 외교부가 5년짜리 정권 2년여 만에 존재감 제로 '투명 부처'가 돼버렸다. 이러고도 나라가 정말 괜찮을까.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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