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음지의 꽃 / 나희덕

yellowday 2019. 1. 20. 09:45

음지의 꽃 / 나희덕



우리는 썩어가는 참나무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함께 썩어갈수록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

이윽고 잠자던 홀씨들 일어나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


황홀한 음지의 꽃이여

우리는 서서히 썩어가지만

너는 소나기 처럼 후드득 피어나

그 고통을 순간에 멈추게 하는구나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구름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