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꽃 / 나희덕
우리는 썩어가는 참나무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함께 썩어갈수록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
이윽고 잠자던 홀씨들 일어나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
황홀한 음지의 꽃이여
우리는 서서히 썩어가지만
너는 소나기 처럼 후드득 피어나
그 고통을 순간에 멈추게 하는구나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구름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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