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밤의 이야기 10, 15 / 조병화

yellowday 2019. 1. 18. 16:52

밤의 이야기 10 / 조병화

   


  내가 어느날
  하늘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세종로
  저녁 광장 옆에서
  가을의 지혜와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철학과 사색은 담배를 물고
  비각 모퉁일 돌고 있었다

  생은 아침 일어나서부터 저녁 잠들 때까지
  그저 있었다 가면 그뿐
 
  비석은 석공의 수입을 위하여 세워지고
  동상은 철물상의 거래로 끝이 나는 거
  역사는 한낱 사학교수의 생활을 위하여 있고
  의사당은 아버지를 위하여 있는 거
 
  세상은 몽땅 상사거래
  존귀한 것도 없고 비천한 것도 없다
 
  내가 어느날
  서울 모퉁이 나무 아래서
  빈자의 지혜와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지폐는 가랑잎처럼 날리고 몰리고
  조국은 마냥 동양의 하늘
  낄낄이 손을 잡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어느날
  하늘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후방 사십 리 어느 시장 부근에서
  사자의 지혜와 생자의 지혜를 잡고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밤은 가을을 안고 골목을 걷고 있었다.
 

밤의 이야기 15조병화
                                                   

상실한다는 것은 현명해진다는 거다.
포기한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고독하다는 것은 풀려진다는 거
적적한 장소에서 스스로를 기다린다는 거다.

너와 내가 서로 같이 살고 있으면서
너와 멀어지지도 않고
너와 가까와지지도 않고

이대로 서로 마주 거리를 지니고 있는 것은
내일을 서로 간직함이요
내일을 서로 가벼이 하기 위함이요
스스로를 서로 덜기 위함이다.

그리고 끝으로 하나
너와 내가 해야 할 일은 
작별을 하는 일

어쩔 수 없어도
영 만나지 않을 그 일을
내일의 길목에서 해야만 하는 일
너와 나의 문답은 그때까지다.

상실한다는 것은 현명해진다는 거다.
포기한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고독하다는 것은 풀려진다는 거
적적한 장소에서 스스로를 기다린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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