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는 ‘곡선의 미’에 취한다. 육감적인 플라멩코 댄서의 휠 듯한 춤이 아니더라도 거리를 지나치면 문득 건축물에서 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누구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추억한다. 이 고집스러운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지도를 바꿨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바르셀로나는 중독의 도시가 됐고, 그 지독한 중독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다.
구엘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전경. 뒤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세계유산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남긴 건축물 중 다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여행자들을 품에 안고, 눈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구엘공원이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벤치에 새겨진 모자이크에는 모두 그의 열정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벤치 위에 누워 따사롭고 호화로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린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다. 공원의 건축물들은 파도를 치듯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다. 정문 앞 경비실은 동화 속 풍경을 담았고 이 지역 카탈루냐 문양을 새겨 넣은 모자이크 된 뱀도 독특하다. 담 자락에서 발견하는 모자이크들은 깨진 타일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형상으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1 구엘공원의 건축물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넘친다. 정문앞 건물은 동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2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구엘공원의 도마뱀 상은 이방인들에게는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3 구엘공원의 개성 넘치는 모자이크.
공원 건축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 Eusebi Güell )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본래는 주거용 목적으로 지었지만 공사는 도중에 중단됐고 일반인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가우디의 저택과 광장을 거쳐 공원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낸 도시의 실루엣이 지중해에 비껴 어우러진다.
거리로 나서면 곳곳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1882년 짓기 시작한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웅대한 규모에 있어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돔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가우디는 40여 년간의 생애를 대성당 건설에 바쳤고 사후에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산트 파우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우디의 거리로 불린다. 이방인들은 밤늦도록 노천바에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며 가우디에 취한다. 쌉쌀한 맥주나 스페인 전통주 ‘상그리아’ 한 잔이 감동 위에 곁들여진다. 이곳에서 언뜻 눈에 띄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특이하다. 평일 점심때 2시부터 느긋하게 정찬을 즐기는가 하면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마련돼 있다. 저녁은 9시 넘어서 먹는다. 주말에는 아예 10시쯤 시작해 자정까지 저녁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바와 카페들이 뒷골목에는 즐비하다.
건물에 깃든 고집스러운 곡선미
보행자의 거리인 람브라스에서 이어지는 길목에서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이어진다. 걷다 보면 천재 건축가와 골목에서 조우하는 느낌이다. 구엘궁전은 실타래를 꼬아놓은 듯한 굽이치는 정문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나 아파트로 지었던 카사 밀라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그 외형에 일단 눈이 현혹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을 담아 석회암 건물의 창과 벽에 바다와 파도의 굴곡을 실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한 가우디의 정신이 녹아 들었다.
1 건물 정면을 석회암으로 치장한 카사 밀라.
2 동굴 느낌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창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작품만 구경하는 별도의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물론 도시의 건축미가 가우디 혼자만의 열정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몬타네르( Lluís Domènech i Montaner )가 지은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가우디에 감명받아 건축한 첨단 돔형의 아그바르 타워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바르셀로나는 유럽대륙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 덕에 스페인 제일의 상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자양분 삼아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다. 피카소, 미로 등도 이 중독의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의 꼭짓점에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우디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전 재산을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1 바르셀로나에는 건축물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의 혼이 숨쉰다.
2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강렬함과 곡선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굳이 계획된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힘은 세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그 완성에는 지난한 세월과 건축에 대한 짙은 사랑이 배경이 됐다. 가우디를 부둥켜안은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더욱 설레고 끌린다.
가는 길
바르셀로나까지 직항편이 운행 중이나 프랑스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차궤도가 달라 국경역인 포르트부에서 갈아타야 한다. 역은 산츠역과 프란사 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탈리아 등에서 이어지는 야간열차나 특급열차도 여럿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5개의 메트로 노선이 도심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메트로를 이용하기에는 산츠역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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