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설야(雪夜) / 김광균

yellowday 2017. 12. 22. 09:32

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김광균은

 

김기림, 정지용과 더불어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는 특히 김기림이 지적했듯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고

회화적인 시를 즐겨 쓴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도시적 소재를 바탕으로 공감각적 이미지나 강한 색채감,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 등의

기법을 시에 차용하였으며, 특히 사물의 한계를 넘어 관념이나 심리의 추상적 차원마저

시각화시켰다.

그의 시 속에는 소시민적 서정과 문명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삶의 우수와 같은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함,

②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을 시도함,

③ 강한 색채감으로 감각도 높은 정서를 형상화함,

④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관념이나 심리 등의 추상적인 것마저 그려 내려고 함.



김광균은 심상의 제시에 탁월함을 보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으로 정서와 관념까지도 형체와 색깔과 소리로 나타내려 했는데,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등의 표현은 그러한 성향을 잘 보여 준다.

깊은 밤, 홀로 앉아서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랑했던 지난날의 순결한

한 여인을 떠올리고는 서글픔에 잠기는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희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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