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44 김명인- 너와집 한 채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43 문인수- 쉬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42 황지우-겨울-나무로 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41 박상순-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40 박꽃-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1977년> ▲ 일러스트 잠산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29 김종길 -성탄제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100편-제39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 애송詩 사랑詩 2012.11.16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 애송詩 사랑詩 2012.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