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8.08 06:44
병자호란 때 오랑캐만큼 백성에게 욕먹은 인물이 정명수라는 조선 사람이다. 포로가 됐으나 말을 배워 적장(敵將)의 역관(譯官)으로 돌아와 위세를 부렸다. 조선 사정을 밀고해 충신을 죽였고 간신과 결탁해 국정을 농락했다. 조정이 국방에 힘쓰려 하면 달려가 일러바치는 통에 다들 벌벌 떨었다. 그에게 뇌물을 먹였고 처가 친척 관노비까지 벼슬을 줬다. 조선엔 충신이 많았지만 살모사 같은 몇 명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웃 강대국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을미사변은 일본이 조선 왕후를 살해한 야만적 국가 범죄였다. 그러나 쳐다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조선인 가담자다. 우범선은 왕실을 지키는 훈련대 대대장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군에게 궁궐 문을 열어주고 살육 현장을 호위했다. 전날 일본 공사에게 만행을 재촉한 것도, 칼을 맞고 헐떡거리는 왕후를 불태운 것도 우범선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는 모양이다. 강국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정명수·우범선 둘 다 동포 손에 죽었으니.
▶사실 훨씬 논쟁적인 인물이 흥선대원군이다. 일본군 호위를 받으며 왕후 시해 때 궁궐에 들어왔다. 일본은 그를 이용해 사건을 궁궐 내 암투로 위장하고 싶었다. 강제로 왔다는 설도, 앞장섰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그는 결과적으로 일본을 도왔다. 세상 보는 눈은 어두웠을지언정 나라 사랑만은 투철했던 인물이 왜 그랬을까. 나라를 깡그리 잊을 만큼 '우리 안의 적(敵)'이 미웠던 걸까.
▶구한말 일본은 한국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 돈 들여 밀정을 쓰지 않아도 정보가 줄줄 들어왔다. 당파 싸움에서 밀린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와 내뱉는 하소연만 들으면 훤히 보였다. 일본에 날을 세우던 어제의 친청·친러 세력이 시대가 달라지자 낯빛을 바꾸고 달려왔다.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오직 강한 것을 바라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다"고 한국을 비판했다. 강국을 뒷배 삼아 서로 물어뜯으니 백성은 나라가 망해도 슬퍼할 수 없었다.
▶강대국이 조선을 농락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우리 내부 갈등에 기름을 흠뻑 뿌려 서로 할퀴다가 스스로 무너지게 했다. 친일파가 친청파를 죽이고, 친러파가 친일파를 죽이고…. 그러다 애국자의 씨가 마르면 나라를 날로 먹었다. 백여 년 전 일본이 그랬다. 중국의 제국주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내부 분열을 조장해 다스리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몸에 뱄다. 그들이 일본만 못할까. 그런 역사를 뻔히 알면서 우리는 사드 앞에서 다시 쪼개지고 있다. 정말 숙명인가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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