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조영남의 그림

yellowday 2016. 5. 18. 17:03

입력 : 2016.05.18 10:36

현대미술의 수퍼 스타 데이미언 허스트는 100명 넘는 조수(助手)들과 함께 작업한다. 그의 '스폿 페인팅(점 회화)'은 하얀 바탕에 동그라미를 50개쯤 다양한 색깔로 그려넣는 작업이다. 그는 어떤 색을 어떤 위치에 칠하라고 지시만 할 뿐 작품에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스핀 페인팅'은 도자기 물레 위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한다. 그는 발로 물레를 돌리며 조수들에게 돌아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던지라고 한다. "빨간색 더!" "노란색 더!" 그러면 캔버스에 허스트의 계산과 우연이 섞여 희한한 색의 세계가 펼쳐진다. 거기에 허스트가 사인을 하면 수백만달러에 팔린다.

▶허스트는 "내가 직접 그림을 그린다면 컬렉터들은 형편없는 작품을 사게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한 이후 현대미술은 갈수록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이미 있는 사물을 이용하거나 남의 손을 빌리는 일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작가의 '손맛'뿐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있는 '개념'과 '의도'가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탓이다.

▶앤디 워홀은 메릴린 먼로, 통조림 깡통 같은 작품의 실크스크린 작업을 조수들과 함께하다가 아예 공장으로 넘겼다. 그는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모두 기술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천의 바느질을 미술품 제작 업체에 맡긴다. 플라스틱 소쿠리를 이어 대형 설치 작품을 만든 최정화도 전문 업체와 조수들을 썼다. 평면 회화를 그리는 화가 중에도 단순작업에 조수들 힘을 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었던 것일까. 가수이자 방송인·화가로 활동하는 조영남씨가 8년 동안 자신의 '화투 그림' 300여점을 지방의 무명 작가에게 맡겨 대신 그리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화(代) 작가가 90%가량 그려 올려 보내면 조씨가 나머지를 그려 사인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조씨는 "화가들은 다 조수를 쓴다"며 '미술계 관행'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그린 샘플을 조수가 똑같이 그린 것이므로 내가 사인하면 내 작품"이라고도 했다.

▶워홀이나 허스트가 조수들을 쓴 데는 확고한 미학적 소신이 있었다. 그들은 조수들과 함께 새로운 사조(思潮)의 문을 열었다. 그들의 작품엔 예술의 생명인 독창성과 진정성이 있었다. 또 그들은 작품이 조수들과 해낸 공동 작업의 결과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수많은 시간 고뇌하며 붓질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화가들은 조씨의 '관행'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ㅈㅗ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