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지진과 일본인

yellowday 2016. 4. 18. 17:41

입력 : 2016.04.18 06:22

몇 년 전 일본에서 제법 큰 지진을 겪었다. 저녁 뉴스를 볼 때였다. 먼저 건물이 뒤틀리는 소리가 귀신 울음처럼 퍼지다가 우르르

진동이 밀려왔다. 두려움에 땀이 맺혔다. 그때 TV에서 뉴스룸의 꽃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봤다. 앵커는 침묵했다. 그의 시선에서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공포를 봤다. 정적(靜寂)의 몇 초 동안 다들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죽을지 모른다. 그만 멈췄으면….'

묘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안고 산다는 동질감이었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피해 지역을 취재했다. 고속도로는 끊기고 2차로 국도만 열렸다. 도쿄에서 후쿠시마까지 평소 3~4시간

길이 22시간 걸렸다. 대부분 고향 집을 찾아가는 차였다. 가족의 생사를 몰라 발을 구르는 운전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한산한 반대 차로를 침범해 달리지 않았다. 누군가 넘어가 차들이 엉켰다면 이틀이 지나도 그들은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진 현장은 참담했지만 통곡과 절규가 들리지 않았다. 당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당했을 때 사람은 분노하고 절규한다.

지진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분노해야 소용없다면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삼각 김밥 한두 줄로 버티던 노인들이 눈 덮인 차가운

체육관에서 줄줄이 세상을 등졌다. 구호물자는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선진국 일본에서 이게 웬일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인내했다.


▶엊그제 큰 지진이 규슈 지방을 덮쳤다. 지진 규모가 21년 전 6300명이 숨진 한신(阪神) 대지진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번엔 40여명이

숨졌다. 한신 대지진 피해지는 대도시였고 이번엔 한적한 지방이라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을 것이다. 일본은 꾸준히 지진을

연구했다. 기술을 개발해 건물 내진(耐震) 기준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덕분에 지진 규모가 비슷해도 피해 규모는 점점 줄고 있다. 이번에도

 효과를 봤을 것이다. 통곡하고 절규하고 데모하고 단식 투쟁하는 대신 인내하고 연구하는 것, 이것이 일본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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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구마모토현 등 일본 현지 당국에 따르면 지난 14일부터 이어진 지진으로 전날까지 41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연쇄
지진으로 피해가 가장 큰 구마모토현 마시키에서 경찰이 파괴된 가옥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웅장하고 풍요했다. 그중 상당수가 화산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육중한 산맥과 기묘한 온천이 그렇다. 자연은 혜택만큼 공포를 준다. 아름다운 일본은 불덩이 위에 떠 있다.

열도를 집어삼킬 대지진이나 후지산 대폭발이 오늘 당장 일어나도 이변이 아니다. 고베와 후쿠시마가 그랬듯 규슈 역시 조만간

복구될 것이다. 우리의 단단한 삶터 한반도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을 마음속 깊이 위로하고 응원한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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