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삼척 옛 절터서 최상급 통일신라 청동정병 출토

yellowday 2016. 6. 3. 14:32

입력 : 2016.06.03 03:00 | 수정 : 2016.06.03 09:49

"한국적 양식 확립, 고려로 이어져…
이것과 형태 비슷한 日청동정병,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 커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정병(위 사진). 왼쪽은 높이 34.2㎝, 오른쪽은 34.8㎝. 아래 사진은 흥전리 절터의 청동정병 출토 상태.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정병(위 사진). 왼쪽은 높이 34.2㎝, 오른쪽은 34.8㎝. 아래 사진은 흥전리 절터의 청동정병 출토 상태.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1200년 전 맑은 불심(佛心)의 힘일까. 강원도 삼척 산골짜기 옛 절터에서 통일신라 때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정병(靑銅淨甁) 두 점이 흠결 없이 완벽한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일감 스님)는 지난 4월부터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를 3차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최상급 정병이 출토됐다며 2일 현장에서 공개했다.

"이건 기적이에요. 어디 하나 깨지거나 구멍 난 데 없이 완형이잖아요."

해발 717m 산속 절터에서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됐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청동정병은 2009년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일부 훼손된 상태로 출토된 2점과 충남 부여 부소산에서 일제시대 때 공사 중 수습된 1점뿐이다. 최 교수는 "8세기로 추정되는 인각사 정병이 당나라 양식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해 그보다 늦은 시기의 이 정병은 한국적 양식이 확립돼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발전 양상을 보여준다"며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통일신라 혹은 당나라 것으로 소개되는 청동정병이 있는데 이것과 형태가 매우 비슷해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인각사 정병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위쪽 길게 솟은 부분)가 매우 길고 몸체가 직선에 가깝지만, 흥전리사지 정병은 첨대가 짧아지고 몸체는 어깨가 둥글어졌다. 이런 특징은 고려시대로 이어져 첨대가 둥글고 두꺼워지면서 몸체도 더 둥근 계란형으로 바뀐다. 통일신라 정병은 문양이 없지만, 고려 때에는 은 입사 기법까지 활용해 무늬를 넣어 국보 제92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정병'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정병은 부처나 보살에게 바치는 맑은 물을 담는 물병. 관음보살이 늘 손에 쥐고 있고 고려불화 '수월관음 도'에는 달빛 비치는
 바다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 옆에 언제나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강원도 오지 산골에서 어떻게 통일신라 청동정병이 나왔을까.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까지 통일신라
문화와 기술력이 전파됐다. 경주에서 출발해 양양 선림원지, 진전사지 등 선종사찰과 연결되는 불교 문화의 루트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