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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막기위한 농지法, 23년째 '농지 기부'도 봉쇄

yellowday 2016. 5. 9. 16:57

입력 : 2016.05.09 03:00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2부-4] 벽에 막힌 現物 기부

평생 모은 땅, 애육원 주려해도 농사 안짓는 공익법인은 못받아
善行까지 원천적으로 막아…
까다로운 절차 거쳐 허용돼도 연구·실습용 이외엔 사용 못해

경북 포항시의 아동복지시설 '선린애육원' 원장을 지낸 이희동(72)씨는 지난해 애육원과 맞붙은 농지(農地) 450㎡(136평·시가 2000만원)를
애육원에 기부하려다 실패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또는 법인)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 때문이었다. 이 규제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은 영농(營農)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농지를 기부받을 수 없다.

이씨는 이 땅을 팔아 현금으로 기부하려 했지만, 사겠다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이씨와 애육원 측은 관련 정부 부처에 여러 번 민원을
제기했지만 "안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현재 이 농지는 다른 용도로 활용되지 못한 채 빈 땅으로 남아 있다. 애육원 관계자는 "이 땅을
기부받으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로 쓰려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지 기부 가로막는 겹겹이 규제

2014년 노환으로 사망한 고(故) 이재식(당시 69세)씨는 지난 2006년 시가 3억원짜리 1260㎡ 규모의 농지와 토지를 푸르메재단이란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군(軍) 복무 시절 다리를 다친 이씨는 "장애인 전문병원을 만들겠다"는 이 재단의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농지법이 이씨의 발목을 잡았다. 이씨는 "평생 모은 재산이 땅밖에 없는데, 왜 나라에서 기부를 막느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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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저금리 쇼크로 운영난을 겪는 공익법인들이 대안(代案)으로 농지·주식 같은 현물을 기부받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번번이 높은 규제의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민(영농법인 포함)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장학재단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공익법인은 농지를 기부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에 대해서만 농지 소유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무용지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린애육원처럼 놀이터로 활용할 목적으로 농지를 기부받으려 하면

 허가가 나지 않는 것이다.

농지 기부를 막는 농지법 규정은 1994년부터 시행됐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농촌에 위장전입해 농지를 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전문가들은 "농지 투기를 막겠다는 법의 취지는 옳지만, 이 때문에 선행(善行)까지 봉쇄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고 지적한다.

지난 18 대 국회 때 '농지 기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해당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농지 기부받아도 무용지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농지를 기부받더라도, 사회 공헌 사업에 이용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경기 남양주시의 장애 아동 복지시설

A 법인은 지난 2014년 6월 한 독지가로부터 강원 평창군에 있는 땅 24만㎡(7만3000여평·시가 약 17억원)를 기부받았다. 그러나 이 땅이

법인 소유로 넘어오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기부받은 땅에 약 1만8000㎡(5500평)의 농지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강원도청이 허가를 미룬 것이다.

6개월간의 씨름 끝에 기부 허가를 받았지만, 이번엔 "기부받은 농지를 농사나 연구·실습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농지법 규제에 걸렸다.

이 법인 관계자는 "장애 아동을 돌보는 복지법인이 거창한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고민 끝에 '자연체험학습장'

이라도 만들어 운영하려 하는데 주무 관청의 허가가 떨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은 농지 기부에 대해 어떤 제한도 하지 않고 있다. 황창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물 기부를 활성화해도 모자랄 판에 주식이나 농지의 기부를 막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며 "농사 등 다른 용도로 쓰기 어려운

유휴(遊休) 농지에 대해선 기부 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