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교동최씨고택
경북 경주시 교동(校洞)에 있는 만석꾼 경주최씨의 고가옥.(170여년된 한옥)
(1971년 5월 26일 중요민속자료 제27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보통 경주 최부잣집 또는 경주 최진사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가옥이 위치한 곳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 터라고 전해진다.
경주최씨 최언경(崔彦璥 1743~1804)이 이곳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약 2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이전까지는 최부잣집의 파시조(派始祖)인 최진립(崔震立)부터 약 200년 동안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교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경주 내남면 게무덤에서 7대를 내려오면서 살았고 교동에서 5대를 만석꾼으로 유지하며 살았다.
최부잣집에서 전해오는 전통은
1.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2.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다.
3.또한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4.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고,
5.며느리는 3년동안 무명옷을 입고
6.사방 100리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고 했다.
최부잣집의 1년 쌀 생산량은 약 3천 석이었는데 1천 석은 사용하고, 1천 석은 과객에게 베풀고
나머지 1천 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구한말에는 신돌석 장군이 이 집으로 피신하였고 최익현 선생이 여러날을 머물러 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의친왕 이강(李堈)이 사랑채에서 엿새동안 머물면서 최준(崔浚 1884~1970)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최준은 집안의 마지막 부자였는데 백산 안희제(安熙濟)와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여
막대한 독립자금을 제공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백산상회는 결국 부도를 맞게되었고 3만 석에 해당하는 빚을 지게되었다.
이로 인해 일제 식산은행(殖産銀行)과 경상합동은행에게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는데
식산은행 아리가(有賀光豊) 총재가 최준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빚의 절반을 탕감하여 주었다고 전해진다.
해방후 최준은 김구를 만난 자리에서 안희제에게 전달한 자금이 한푼도 빠지지 않고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백산의 무덤에서 그를 기리며 통곡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전 재산은 교육사업에 뜻을 둔 최준의 뜻에 따라 대구대학교(영남대학교 전신) 재단에 기부하였다.
경주 최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답니다.
다음은 육연(六然) - 자신을 지키는 교훈
1. 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라.
2. 대인애연(大人靄然) 남에게 온화하게 대해라.
3.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져라.
4. 유사감연(有事敢然) 일이 있을 때 과감하게 행동하라.
5.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성공) 얻었을 때도 담담하라.
6. 실의태연(失意泰然) 실패했을 때에도 태연히 행동하라.
이와 같이 최부자집 자손들이 지켜야 할 여섯 가지의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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